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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여인’ 오은선이 안나푸르나 정상에 오를 때 입었던 옷은 고어텍스일까, 아닐까? 신발 위에 착용하는 스패츠는 왜 그렇게 길고 특별해 보였을까? 여러 고봉에 오르면서 동상 한 번 안 걸린 그녀의 장갑은 어느 브랜드일까?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는 오은선의 장비 이야기를 들어봤다.
먼저 첫 번째 물음에 대한 답은 ‘NO!’다. 대부분의 등반가들처럼 오은선도 정상에 오를 때는 보온력이 뛰어난 우모복을 착용한다. 정상 공격용 우모복은 보온력은 좋으나 부피가 크다. 때문에 마지막 캠프 전까지는 거의 입지 않는다. 컨디션이 좀 떨어지거나 체온을 보호해야 할 상황에만 착용한다.
우모복에 고어텍스 재킷을 껴입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우모복 자체의 부피 때문이다. 여기에 다른 옷을 덧입을 경우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워진다. 고소에서는 약간이라도 움직임에 제약이 있으면 체력 소모가 심하다. 불필요한 옷의 착용을 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고어텍스가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히말라야 고봉의 정상부는 공기가 희박하고 매우 춥다. 비가 올 확률도 제로니 고어텍스의 방수투습기능보다 보온력이 훨씬 중요하다. 게다가 우모복의 겉감으로 쓰이는 드라이로프트나 퍼텍스 등은 어느 정도 방수기능을 가지고 있다. 별도로 고어텍스 재킷을 입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고어텍스류의 방수·투습성 재킷이나 바지가 히말라야 등반에서 필요 없는 것은 아니라고 오은선은 말한다. 최종 캠프 전까지, 바람이 불고 추울 때는 반드시 고어텍스 재킷을 착용하고 있다. 다만 오은선은 고어텍스 바지는 잘 입지 않는 편이다. 무릎 위까지 올라오는 고산등반용 부츠에 엉덩이를 덮는 재킷이면 충분하다는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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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상 공격용 스노고글. 폭풍설을 막는 데 요긴하다.
2. 손가락 동상을 막기 위해 착용하는 우모장갑.
3. 수분 섭취가 매우 중요하다. 필수품인 수통.
4. 침낭과 매트리스는 마지막 캠프까지 올라가는 장비다.
5. 등반용 배낭은 용량이 넉넉하고 가벼워야 한다.
6. 안전벨트와 하강기, 등강기, 카라비나 등도 빠질 수 없다.
7. 최종 캠프용으로 주로 쓰는 초경량 텐트. 오 대장이 직접 수송할 때도 있다.
8. 아이젠과 등반용 삼중화.
상황에 따라 구분된 의류 조합
오은선이 착용하는 의류를 고도와 상황에 따라 크게 세 개의 파트로 나누고 있다. 캐러밴 도중에 입는 것과 베이스캠프에서 머물 때, 그리고 등반 중에 입는 의류를 확연히 구분한다.
캐러밴은 국내 봄·가을 산행 때 입는 옷과 차이가 없다. 그리고 장시간 머무르는 베이스캠프에서는 아무래도 편한 것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등반 중에 착용하는 의류를 선택할 때는 보온력과 활동성이 최우선 고려대상이다.
캐러밴 때 반팔이나 반바지는 입지 않는다. 따가운 햇볕에 피부가 타는 것을 방지함과 동시에 체온 보존이 목적이다. 히말라야는 한낮에도 바람이 차기 때문에 갑자기 돌풍이 불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내의는 베이스캠프와 등반 중에 입는 것을 구분한다. 아무래도 고소에서 입는 것이 보온력이 좋다. 하지만 두꺼운 것보다 얇고 편안한 것을 선호한다. 그 위에 신축성 있고 부드러우며 활동성이 좋은 파워스트레치 같은 파일류의 바지를 입는다. 바지나 티셔츠가 몸을 조이는 것은 가급적 피한다. 혈액순환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오은선은 고소 캠프에서도 조이는 양말을 신지 않고 잠을 잘 정도다.
상의는 러닝에 얇은 내의와 약간 두꺼운 파일 티셔츠, 그리고 상황에 따라 다운 조끼나 보온력이 있는 재킷을 덧입는다. 히말라야라고 움직임이 둔해질 정도로 옷을 껴입는 것이 아니다. 최종 캠프 전까지는 여기에 고어텍스 재킷을 덧입는 정도면 충분하다. 혹 날씨가 추울 때는 우모복을 입기도 한다.
정상에 갈 때는 약간 달라진다. 추울 때는 약간 두터운 파워스트레치 상·하의에 우모복을 껴입는다. 날씨가 괜찮을 것 같으면 내의 위에 바로 우모복을 입기도 한다. 이는 보온력보다 활동성과 무게를 더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새벽에 출발할 때는 약간 추워도 해가 뜨고 움직이면 몸에서 열이 나서 견딜 만하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정상 공격용 우모복은 프랑스제 발랑드레를 사용한다. 작은 키 탓에 원피스는 맞는 것이 없어 투피스 제품을 이용한다. 최고급 우모제품으로 유명한 브랜드인 만큼 성능이 확실하다는 평가다. 하지만 최종 캠프에 오르기 전까지는 주로 블랙야크 우모복을 보온용으로 입는다. 수납도 편하고 활동성도 좋기 때문이다.
- ▲ 좌)배낭 속에는 초경량 취사구가 들어 있다. / 우)사탕과 비스킷, 파워젤 정도가 간식의 전부다. 고소에서는 잘 먹히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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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예방에는 장비보다 좋은 습관이 결정적
오은선은 손이 차가운 편이다. 하지만 14개 거봉에 오르는 도중 작은 동상 한 번 걸리지 않았다. 비결은 좋은 장비보다 좋은 습관에 있다. 그녀는 항상 신축성이 좋은 얇은 장갑 위에 두터운 장갑을 덧끼는 스타일이다. 상황에 따라 덧끼는 장갑이 우모제품이 되기도 하고 손가락장갑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등반 도중 손을 끊임없이 움직인다는 점이다.
아무리 장갑이 좋아도 영하 30도의 혹한에는 장사가 없다. 피켈을 잡지 않은 비어 있는 손은 한시도 쉬지 않고 쥐고 펴기를 반복한다. 수시로 손을 바꿔가며 이러한 동작을 계속한 덕분에 동상을 예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가능하면 고소 캠프에서는 장갑을 벗지 않고 지낸다. 취사도구를 다룰 때도 항상 얇은 장갑은 착용한다.
모자는 얼굴이 타는 것을 방지하고 머리를 보호하는 데 필수장비다. 이 역시 상황에 따라 구분해 사용하는데, 3,000m 고도를 넘으면 보온을 위해 털모자를 쓴다. 보온력이 좋은 양모 소재로 내피에 플리스를 덧댄 것이 그녀가 선호하는 스타일이다. 피부가 예민해서 까칠함을 참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모자는 전진 캠프에 오르기 전까지 늘 착용한다. 잠 잘 때도 모자를 쓰고 잔다. 특히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머리 보온을 위해 더욱 신경을 쓴다.
베이스캠프 이상의 고도에서는 발라클라바와 고소모를 사용한다. 얇은 것과 두꺼운 것을 동시에 사용하며 상황에 따라 골라 착용한다. 목에 두르는 버프도 빠질 수 없다. 정상에 오를 때는 고소모와 발라클라바, 버프 등으로 이중, 삼중 보온해야 안심이 된단다.
양말은 항상 두 겹으로 신는다. 등산용 양말과 양모 함량이 70% 이상인 겨울용을 가지고 다닌다. 밑에는 얇은 것 두 개, 위에는 얇은 것과 두꺼운 것 하나를 덧신는다. 그리고 우모가 들어간 텐트슈즈도 그녀의 필수품이다. 최종 캠프에서는 양말은 벗고 텐트슈즈만 신고 잠을 청한다.
정상에 갈 때 추가하는 것이 신발창에 붙이는 핫팩이다. 마칼루 때부터 사용한 이 핫팩은 10시간 정도 효과가 지속된다. 그렇다고 발바닥을 뜨끈뜨끈하게 데워주는 수준은 아니고 발이 시린 것을 방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핫팩은 신발창보다 좀 작은데, 가능하면 앞쪽으로 붙여서 발가락을 보호한다. 그녀의 이러한 꼼꼼함이 발 동상을 예방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 ▲ KBS 본관에서 열린 오은선 안나푸르나 사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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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등반 하려면 장비가 가벼워야
처음에는 등반용 삼중화로 밀레 제품을 신었다. 하지만 요즘은 조금 더 가벼운 라스포티바 신발을 사용한다. 하지만 예전의 무거운 제품에 비하면 보온력이 조금 떨어진다. 이러한 문제는 핫팩을 이용해 보완하고 있다.
아이젠은 페츨의 설벽용 경량제품을 쓴다. 2008년경 구입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데, 바닥에 스노볼 방지용 플라스틱판이 붙어 있는 모델이다. 가벼운 빙벽이나 혼합등반, 주마링 등에 전혀 불편함이 없다. 히말라야 등반가들이 많이 사용하는 제품이다.
등반시 스틱과 피켈을 모두 사용한다. 경사도가 낮은 설사면 구간이 많으면 스틱이 편하다. 정상으로 갈 때는 주로 피켈을 이용하지만 상황에 따라 스틱을 사용하기도 한다.
피켈은 페츨과 블랙다이이몬드 제품을 썼다. 히말라야 등반용은 가벼운 것이 가장 좋다. 무게를 최우선으로 고려해 선택한다. 이번에는 60cm 정도로 길이를 약간 줄였는데, 경사가 급할 때 오히려 편했다고 한다.
등반에 필요한 기본 장비인 안전벨트, 등강기, 하강기 등은 필수품이다. 벨트는 가볍고 아이젠을 찬 상태에서도 착용할 수 있는 히말라야용 벨트를 사용한다. 카라비나는 5개 정도가 전부다. 벨트용 링 카라비나와 카메라 고정용·하강기·등강기·확보용 그리고 여분의 카라비나 정도다. 주마는 오른손 한 쪽만 사용한다.
고글은 항상 여분을 배낭에 넣어둔다. 정상 공격 때는 스노고글을 쓰지만 그 외에 일반적인 등반 상황에서는 스포츠 선글라스면 충분하다. 캐러밴 때는 훨씬 더 가벼운 선글라스를 선호한다.
배낭은 작은 캐러밴용과 등반용으로 구분해서 쓴다. 등반용 배낭에는 침낭, 매트리스, 우모복, 티타늄 코펠 세트, 티타늄 가스버너, 가스통, 물휴지, 간식 등을 넣어서 꾸린다. 기록을 위해 자그마한 L사의 콤팩트 디지털카메라를 항상 휴대한다. 상황에 따라 텐트를 지고 가는 경우도 있다.
텐트는 블랙다이아몬드의 1~2인용 초경량 제품을 사용한다. 하계용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얇은 텐트다. 하지만 단독등반이 많았던 그녀의 입장에서 보면 이마저도 부담스럽다. 로체와 초오유 등반 때는 혼자서 이 텐트와 식량 등 모든 장비를 직접 수송하기도 했다. 이러한 점이 단독등반의 어려움이다. 소형 텐트는 마지막 캠프에서 주로 사용하며, 여러 명이 갈 때는 나눠서 지고 가기도 한다.
전진 캠프용 침낭은 최대한 가벼운 것을 사용한다. 그러다 보면 아무래도 보온력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우모복과 다른 의류를 이용해 이를 보완한다. 매트리스 역시 무게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품목이다. 에어매트리스가 안락하긴 하지만 무게 때문에 빨래판형 제품 가운데 약간 두꺼운 것을 쓴다. 하지만 이런 제품도 장시간 사용하면 얇아지고 등이 시리다. 그래서 캠프에서 지낼 때는 침낭과 매트리스 사이에 옷과 장갑 등을 많이 깔아 최대한 보온력을 유지한다.
그녀가 가지고 다니는 간식은 사탕과 비스킷 몇 개가 전부다. 대부분의 사람이 고소에서는 식욕이 떨어져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 어렵다. 컵라면이나 동결건조 알파미가 주식이지만 실제로 먹는 양은 아주 적다. 대신 보온병과 물통을 가지고 다니며 따뜻한 물이나 차를 많이 마신다. 그리고 정상에 갈 때는 반드시 파워젤 세 개를 넣어서 간다. 그 중 두 개는 먹고 하나는 남겨서 내려온다. 하나는 비상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