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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세계최고봉, 나도 오를 수 있다.

대구담 2016. 2. 27. 11:25

세계최고봉, 나도 오를 수 있다. 

  • 글=김창호·월간山 기획위원·몽벨 자문위원
“6,000~7,000m봉 등반부터 경험하라”

        네팔 쪽 쿰부 아이스폴~사우콜~남동릉 루트

1989년부터 고산등반을 시작한 필자는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등반을 지속하고 있으며, 산소를 사용하지 않고 8,000m급 봉우리만 13번 등정했고 7,000~5,000m급 6개 봉우리를 세계 초등정했다. 에베레스트 남동릉은 2007년 봄 시즌에 8,500m의 이른바 ‘발코니’까지 올랐으며, 2008년 로체(8,516m) 등반 때 또 한 번의 경험을 했다(에베레스트 남동릉과 로체 서벽 루트는 7,500m 캠프3을 거쳐 7,800m까지 루트가 같다).

고산등반은 잘 닦인 경기장에서 행해지는 스포츠경기와는 다르다. 자신의 신체는 물론 원정등반을 구성하는 함수 속의 변수들은 너무나 많은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점이 등반으로 끄는 자석 역할을 한다고도 하지만 경험자나 첫경험자 모두에게 불안감을 갖게 하는 요인이다.


▲ 에베레스트 정상이 지척이다. 자신에게 숨어 있던 새로운 에너지를 뽑아내어 최고봉으로 오른다.

 

에베레스트 초등정 루트 남동릉 그리고 친환경 등반

에베레스트 등반에 나서기로 결정하고 한국 내 원정등반 대행사에 신청서를 제출, 계약선금 일부를 지불했다면 첫걸음을 디딘 것이다. 이미 유럽의 엘부르즈(5,642m)나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5,895m), 남미의 아콩카구아(6,959m)를 오른 경험이 있을 수도 있다. 없다면 반드시 체험을 해볼 필요가 있다. 3,000m부터 7,000m 이하의 고도에서 자신의 신체 변화가 어떠한지 잘 파악해 두어야 한다.

그리고 출국 전 자신의 건강상태를 체크해야 한다. 폐렴을 앓은 경험이 있는지, 충치나 치통·편두통·치질·위궤양 등의 지병을 가진 사람은 높은 고도에서는 반드시 재발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에베레스트 등반 전에 경험 있는 산악인이나 원정대행사에서는 8,000m급 봉우리 등반 경험을 쌓으라고 조언할 것이다. 적절한 산은 초오유(8,201m)다. 여기에 들이는 시간과 비용은 낭비가 아니다. 오히려 단계적으로 올라가면서 등정의 기쁨으로 열정은 더 커지며, 실패했을 경우에 그 원인을 되돌아 볼 기회를 갖는다. 이렇게 보면 초험자의 경우 에베레스트 등정 시도까지 전체 준비기간은 2~3년으로 상정해야 한다.

1938년 틸만(B. Tilman) 대장이 이끄는 영국원정대의 제7차 등반까지는 티베트 측 북릉으로 에베레스트 등반이 이루어졌고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어 히말라야 등산은 일단 중단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전쟁이 끝나자 히말라야 주변엔 정치적 변화가 일어났다. 즉 티베트는 중공의 점령지가 되었고 철의 장막으로 가려지고 말았다. 그 대신 남쪽 지역인 네팔은 새로이 개국해 지금까지 미지였던 네팔 히말라야의 광대하고 고준한 지역에 새로운 등산대가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 에베레스트 정상으로 오르는 마지막 관문 힐러리스텝.
이렇게 되니 자연 에베레스트도 북쪽으로는 불가능하게 되고 남쪽인 네팔에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 남쪽 루트를 처음으로 탐사한 것은 1951년 가을 십튼을 대장으로 한 소정찰대였고, 1952년은 스위스대가 봄·가을 두 번의 등정을 노렸으나 남봉 직전인 8,595m의 고도에서 되돌아섰다. 드디어 1953년 에베레스트 초등반의 영광은 영국대가 차지하게 되었다. 존 헌트(John Hunt) 대장이 이끄는 원정대는 9개의 캠프를 올리며 5월 29일 힐러리(E. Hillary)와 텐징 셰르파(T. Norgay)가 정상에 올랐다.

남동릉 루트 등반은 현재 4개의 캠프를 설치해 사우스콜(South Col·7,925m)의 마지막 캠프에서 등정 시도를 하게 된다. 출·귀국 기간의 총 원정일수는 두 달여, 베이스캠프 체재일수는 35~40일이다. 남동릉은 북릉~북동릉에 비해 아이스폴의 붕괴 등 객관적 위험은 높지만 등반길이가 짧고 등정률은 높다.

에베레스트에 또 다른 이름이 생겼는데 ‘세계에서 가장 높은 쓰레기장’이라는 오명이다. 친환경등반에 관한 등반 참가자의 행동강령은 히말라야 환경오염 방지를 위한 동경선언에서 채택한 이 슬로건이 적절할 것 같다. ‘발자욱만 남기고 사진만 가져오기(Leave nothing but footprint, Take nothing but Picture)’

에베레스트는 사가르마타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야생동물 보호는 물론 오염으로부터 환경보호에도 애쓰고 있다. 원정대에 적용된 강제규정은 각 팀당 4,000달러의 환경보호예치금을 예치하고 만약 등반 중 규칙을 어기면 정부연락관의 심의를 거쳐 예치금을 되돌려 받지 못할 수도 있다.
 
‘비스타리, 비스타리(천천히)’ 쿰부계곡 캐러밴

4월 초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Kathmandu·1,280m) 트리뷰반 국제공항에 도착하면 기온은 따끈한 한국의 봄 날씨와 같다. 현지대행사 직원들이 나와 화환이나 카타를 대원 각각의 목에 걸어준다. 그리고 정겨운 인사말 “나마스테(안녕하세요)”가 네팔 히말라야 첫 인상으로 남는다.

카트만두에서는 3~4일 체재하면서 부족한 장비와 식량을 구입하고 도보캐러밴을 위한 포장작업을 한다. 그리고 박타푸르·파탄·보드나트 등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적 등지로 하루 정도 관광을 나가는 것도 좋다.

 

쇼핑천국인 타멜(Thamel) 거리는 대여섯 곳의 한국식당을 포함해 카페·식당·토산품 가게들이 즐비하다. 카트만두는 교통체증과 매연, 시끄러운 경적소리가 이국의 풍치에 빠져드는 즐거움을 방해한다. 등반가에게 관심이 있는 산악등반장비점도 많은데 캠핑·트레킹·고산등반에 필요한 각종 고급브랜드의 품목을 고루 갖추고 있어 한국에 비해 손색이 없다.

출국해 비행기를 타면서 자기 몸관리에 세심한 신경을 써야 한다. 비행기 안에서 한기, 카트만두 호텔에서 에어컨으로 인한 감기, 물과 음식을 갈아먹어 배앓이와 설사 등이 컨디션을 나쁘게 만들어 팀 내에서 적어도 한두 명은 편도선이 붓거나 감기 기운으로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 아이스폴 지대의 대형 크레바스는 사다리를 이용해 건넌다.

남쪽 베이스캠프는 웨스트 쿰(West cwm)으로도 불리는 쿰부아이스폴(Khumbu Ice Fall) 기슭 5,350~5,400m 고도 지점의 쿰부빙하에 위치한다. 베이스캠프로 가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버스로 카트만두에서 지리(Jiri)를 들러서 남체바자르까지 도보로 6일을 걸어간다. 그곳에서 베이스캠프까지는 다시 5일 정도가 걸린다. 옛날에는 고소적응에 효과적인 이 캐러밴 루트를 따랐으나 요즘의 통상적인 루트인 두 번째 방법은 카트만두에서 루클라(Lukla·2,840m)까지 비행기로 한 시간여 비행해, 그곳에서 팍딩(Phakding·2,610m)~남체바자르(Namche Bazar·3,440m)까지 2일 정도 도보로 행진해 첫 번째 루트를 따라 가는 것이다.  

 

남체바자르에서 페리체(Pheriche·4,270m)나 딩보체(Dingboche·4,410m)까지는 2일 정도, 로부체(Lobuche·4,910m)~고락셉(Gorak Shep·5,150m)을 거쳐 베이스캠프까지 3일 정도가 소요된다. 걷는 길가에는 민가를 개조해 숙식을 할 수 있게 만든 로지가 많다. 공동 짐은 야크와 소를 이용해 운반하며 대원 개인 짐은 포터들이 등짐으로 나른다.

구름 사이로 나는 프로펠러 경비행기가 오금을 저리게 하고 산 중턱 루클라 비행장에 가까워지면 손잡이를 잡은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가며, “쿵!” 하고 활주로에 내리는 순간 숨을 죽이던 기내는 박수가 터져 나온다. 안전하게 착륙한 기장과 부기장에게 보내는 감사의 표현이다.

산자락으로 휘휘 도는 허리 길을 따라 도보 캐러밴의 시작이다. 산자락엔 봄꽃들이 붉고 밭에는 푸른 보리가 한창이다. 고개를 들면 순백의 미봉들 탐세르쿠·아마다블람·촐라체가 비경을 드러낸다. 쉬는 날 저녁 무렵 포터들이 막걸리와 비슷한 창(Tsang) 한 사발을 들이키면 으레 네팔민요 “레쌈 삐리리(Resham firiri·비단 두건이 바람에 날리네)”를 흥얼거린다. 노래에 춤이 빠질 수 있으랴.

대부분 첫 번째 고소증세는 1,000여 m 고도를 하루에 올리는 남체바자르에서 나타난다. 그래서 포터들은 “비스타리, 비스타리(천천히)” 걸으라고 주문한다. 또 남체바자르에서는 하루 휴식하며 적응을 한다. 이날 샹보체(Syangboche)나 쿰중(Khumjung)마을 방향으로 고도를 300~400m 올렸다가 내려오는 것이 좋다. 고락셉 전에는 퇴석모레인 빙하를 건너게 되는데 길의 흔적은 분명한데 가스가 끼고 흐린 날에는 길을 잃기 쉬워 혼자 운행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한국 푸모리원정대 대원 한 명이 실종, 사망한 예가 있다.

▲ 웨스트쿰 빙하 내원에 위치한 캠프2가 운행하는 대원들 뒤로 보인다.
도보 캐러밴에서는 배낭 안에 보온용 덧옷, 물통, 간식, 양산 등 운행에 꼭 필요한 물품을 넣어 최대한 무게를 가볍게 하고 거북이걸음으로 걷는다. 캐러밴 동안에는 밤낮의 일교차가 심하다. 낮에는 햇빛을 피하기 위해 긴팔 긴바지를 입고, 햇빛이 따갑다면 접이식 양산을 쓰고 걷는 것도 좋다. 물은 자주 마신다. 해가 지면 한기에 대비해 도톰한 방한복을 입고 수면 시에는 수통에 뜨거운 물을 담아 침낭 안에 넣고 잔다.

2007년 에베레스트 원정에서 로부체에 도착한 우리 대원 한 명이 밤 9시경에 갑자기 배를 움켜잡고 신음하는 급한 상황이 벌어졌다. 의사가 동행하지 않았던 원정대는 급히 페리체에 있는 응급진료실로 옮겼고 다음날 헬리콥터로 카트병원으로 옮겨졌는데 급성맹장염이었다. 의사의 말에 의하면 몇 시간만 늦었어도 생명이 위태로웠다 한다. 동료들의 적절한 대처가 한 생명을 구한 것이다.

빙하 위의 베이스캠프

8~9일간의 긴 도보 캐러밴을 끝내면 얼음 빙하 위에 잡석으로 뒤덮인 베이스캠프다. 첫 느낌은 ‘장엄하다’가 아닌 ‘황량하기 그지없다’다. 그러던 차에 로라고개(Lho La·6,026m)에서 세락이 무너지며 일으킨 후폭풍의 날가루가 날려 온다. 그렇게 에베레스트는 차갑게 첫 인사를 건넨다. 전 세계에서 모여 든 각국의 등반가들과 네팔 현지 스태프를 포함해 매년 평균 30여 개팀 1,000여 명이 머무는 빙하 위는 하나의 커다란 타운이 된다. 응급진료소, 빵을 구워 파는 베이커리 대형텐트가 오픈하고, 술을 팔러오는 원주민 장사꾼도 있다.

안전등반을 기원하는 라마제인 뿌자(Puja)를 지내고 나면 본격적인 등반이 시작된다. 캠프1으로 등반 전, 아이젠부터 산소호흡기의 레귤레이터와 마스크까지 세심히 다시 한 번 체크한다. 등반 중에 장비에 문제가 생기면 그때는 이미 늦는다.

힘든 등반 후의 휴식이나 날씨가 흐린 날에는 베이스캠프에 3일에서 길게는 일주일씩 머무른다. 긴 시간 동안 베이스캠프에서 생활은 따분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책이나 음악을 준비해 가는 것이 현명하다. 많은 대원들이 낮잠을 즐기는데 금물이다. 낮에 자면 밤에 잠을 설치게 되고 다음날 운행이 엉망이 된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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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안 룰렛’ 같은 쿰부 아이스폴을 넘어 캠프1

남동릉의 첫 관문인 아이스폴의 루트 개척은 정부산하기관인 사가르마타 환경보호위원회(SPCC)에서 루트를 만들어 두며, 원정대 한 팀당 미화 3,000달러를 받는다. 그리고 그 위쪽은 각 상업등반대를 이끄는 매니저들이 모여 루트 개설에 대해 협의를 하고 각 팀에서 고정로프와 등반 셰르파를 갹출하여 공동작업을 해왔다</dl>

 . 올해부터 네팔 정부는 캠프2에서 정상까지 고정로프를 매년 설치하는 안건을 입안했고 빠르게는 내년부터 아이스폴과 마찬가지로 팀당 또는 한 명당 얼마를 징수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티베트 측 북동릉은 이미 이러한 형태를 갖추었다.

베이스캠프부터 캠프1(5,900m)까지는 평균 5~6시간 소요되고 캠프사이트는 가파른 얼음 등성을 올라서 플라토로 진입해 크레바스 사이에 설치된다. 아이스폴 지대를 운행하는 것은 위험하다. 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무너지는 빙탑에 매년 사망사고가 발생한다. 그래서 직업으로 등반하는 셰르파들조차도 아이스폴 운행 횟수를 최소로 줄이려고 노력한다.

햇빛이 뜨는 낮시간에 혼돈의 아이스폴은 무너져 내린다. 그래서 운행은 새벽 4~5시경 일찍 시작한다. 크레바스를 건너는 알루미늄 사다리가 설치되어 있는데 긴 것은 10여m 되는 것도 있다. 양쪽으로 설치된 고정로프에 더블로 확보하고 손으로 위로 당겨 균형을 잡으며 건넌다. 훈련이 필요하다. 상업등반대가 베이스캠프에서 이 훈련을 시키는 모습을 종종 본다.

빙하 내원에 위치한 캠프2

베이스캠프부터 캠프2(6,400)까지는 약 5km 거리이고, 6,400m 캠프2까지는 평균 4~5시간 걸린다. 대체적으로 눈의 평원으로, 한 시간가량은 몇몇의 사다리를 건너 눕체(7,861m) 북면 방향으로 루트가 나 있으며 그 후는 크레바스가 없는 설면이다.

캠프2는 에베레스트 남서벽 발치에 위치하며 로체 사면으로 나 있는 루트를 조망할 수 있다. 이곳은 에베레스트 남동릉과 로체 서면 루트를 등반하는 전진베이스캠프(ABC) 역할을 한다. 요리사가 상주하여 식사를 제공하며 화장실은 플라스틱 드럼통에 수거, 베이스캠프로 가져 내려오게 된다.

캠프2에 도착하면 또 한 번의 고소증이 온다. 고소증은 해수면고도에 생활하는 사람이높은 곳에 올랐을 때 저기압·저산소증으로 나타난다. 고도에 따른 산소분압률은 5,500m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높이에는 50%이며 정상인 8,848m에는 33%밖에 되지 않는다.

높은 곳에서 저기압과 저산소로 인한 증세는 인체에 큰 영향을 미친다. 첫 번째 단계는 고산병(acute mountain sickness)으로 두통·불면증·현기증·피로·메스꺼움·구토 증상이 나타난다. 두 번째 단계는 고도로 인한 뇌부종과 폐부종으로, 여기까지로 악화되면 사망에 이르게 된다.

 

산소 결핍으로 2단계에 접어들면 뇌세포가 손상된다. 2006년 <미국의학저널(American Journal of Medicine)> 2월호에 발표된 연구결과는 높은 고도에 노출된 등반가일수록 뇌 손상이 컸으며 손상이 누적될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이다.

▲ 캠프3로 오르는 로체 사면에는 인위적인 낙석·낙빙이 떨어진다.

2009년 마나슬루를 등반하던 이탈리아 등반가는 8,000m급 서너 봉우리를 무산소로 오른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6,400m 캠프2에서 캠프3(6,900m)로 운행을 나섰다가 고소증세가 나타나 동료들의 도움으로 캠프2로 내려왔고 휴식을 갖는 도중 몇 시간 후 사망했다. 필자는 사망한 등반가를 텐트 안으로 들이는 일을 도왔는데 마치 잠자는 모습이었다.

 

고소증세에 따른 결과로 죽음이 자기 근처에 와 있어도 정작 본인은 모른다고 생각하니 섬뜩하기까지 했다. 또한 고산등반을 마치고 귀국 후 자기 휴대폰 번호, 집 현관 전자키 비밀번호 등도 기억하지 못하며 등정 후에는 말이 어눌해지는 증상도 보였다.

그러면 이러한 고소증을 완벽하게 예방할 방법은 없는가? 한마디로 없다. 다만 평균적인 가이드라인에 따를 뿐이며 각 대원의 폐활량이 다르듯이 고소증이 나타나는 고도나 증상의 경중도 모두 다르다. 고소증에 관한 연구를 위해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영국의 연구실이 설치되어 그곳을 방문했을 때 연구 중이던 의사는 지금까지 고소의학의 연구수준은 아주 낮다고 했다.

서양 등반가들의 경우 아스피린을 상시 복용하는데 이는 적혈구의 증가로 응고되는 피를 묽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필자도 약을 복용하는데 상당한 거부반응이 있었으나 작년부터 정상등정 전에 아스피린을 먹는다. 다이아목스 등 이뇨제 계열, 혈액순환계의 도움을 주는 비아그라 등이 고소증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도 있다.

상업등반대에서는 캠프3부터 운행과 수면 시에 산소를 사용하는데 이 산소를 과신하면 안 된다. 산소공급을 하더라도 8,000m 높이에서는 저기압에 계속 노출되어 부종 증세는 여전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천천히 고도를 높이고 20~25일간 업다운을 한 후 8,000m대에 진입하는 것이 좋다. 또 충분한 수분 섭취, 수면이 필요하며 체온을 잃지 않게 주의한다.

캠프2에서 저녁노을이 지는 은빛 로체 페이스는 아름답다. 그러나 단단한 얼음으로 된 빙벽을 5~6시간 오르기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평평한 사면의 빙하 내원을 2시간 오르면 빙벽이 시작된다. 얼음은 단단해 아이젠이 잘 박히지 않는다. 미리 아이젠 피크를 잘 갈아 놓을 필요가 있다.

빙벽을 올라 로체 페이스 상의 캠프3

이곳은 정체 현상이 벌어진다. 아침 일찍 캠프3에 짐을 올려놓고 내려오는 셰르파와 오르는 등반가가 겹치게 된다. 복잡하게 엉켜 자기확보의 실패로 추락사하는 사고가 잦다. 항상 자신의 몸을 안전에 곳에 두고 타 등반가를 배려한다. 어센더를 옮겨 끼울 때에는 이중 자기확보를 해야 한다.

고산등반에서 신체가 필요한 첫 번째 요소가 수분과 음식물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음식물을 소화해 에너지를 만드는 데에는 또 많은 산소가 소모된다. 배가 부르지 않게 밥을 먹는 것도 하나의 요령이며, 조금씩 자주 먹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호흡이다. 호흡은 곧 운행 방식이다. 들숨과 날숨은 스쿠버다이빙의 호흡과 같다. 긴 날숨에 짧은 들숨 그리고 호흡이 거칠어지지 않게 꾸준히 운행하는 습관을 국내 산행 때부터 길러야 한다.

캠프3는 빙벽에 만들어진 세락의 단 위에 설치하게 된다. 좁은 캠프사이트는 행동반경을 좁게 만들며, 야간에 화장실 처리에 특히 조심해야 한다. 우모로 된 텐트슈즈는 눈 위에서 신발만큼 마찰력을 갖지 못해 대변을 보러 나갔다가 미끄러져 사망하는 사고가 매년 평균 한 건씩 발생한다. 텐트 주위로 확보용 보조로프를 설치하는 것이 좋다.

▲ 잡석으로 뒤덮인 캠프4 사우스콜.

고소에서의 텐트 생활은 힘들다.

좁은 공간 안에서 먹고 자고 운행 준비를 해야 한다. 얼음을 녹여 물을 만드는 시간은 지루하다. 걸이식 스토브와 코펠이 편리하다. 수면 시에는 머리 보온에 특히 신경을 쓰고, 텐트 문의 지퍼를 3분의 1 정도 열어놓아 산소의 유통을 원활하게 하지 않으면 아침에 두통에 시달린다.

필자의 경우 고소에서의 음식물은 간식을 제외하고는 인스턴트식품을 먹지 않는다. 베이스캠프에서 된장국, 북어국, 미역국을 끓일 재료를 생야채와 함께 한 끼분씩 포장해 가지고 간다.

고소에서 조리 시간도 줄이고 입맛에도 딱 맞다.

 

그리고 베이스캠프 위로의 운행에서는 끓인 뜨거운 물만 먹는다. 사실 아이스폴이 있는 웨스트쿰의 운행에서 한낮에는 매우 덥다고 느낀다. 그러 나 기온은 언제나 영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1996년 파키스탄에 위치한 울타르Ⅱ(7,388m)를 초등정하고 마지막 캠프에 내려온 일본 등반가는 차가운 물을 마시고 그 자리에서 급사한 사례가 있다. 무조건 뜨거운 물을 마셔야 한다. 보온병은 필수품이다. 물이 밋밋하다면 좋아하는 차 종류를 다양하게 준비해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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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풍이 몰아치는 사우스콜, 캠프4

캠프3까지 3~4번의 운행으로 하룻밤 자고 내려왔다면 등정을 위한 고소적응은 끝났다. 이때쯤이면 체중이 3~5kg 줄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체중을 출국하기 한 달 전까지는 운동으로 몸을 단련하고 출국에 임박해서는 체중을 3kg 정도 늘려서 가면 고소적응이 끝나는 시점에 적절한 체중을 유지할 수 있다.

베이스캠프에서 4~5일 쉬는 것보다는 페리체(4,270m)나 딩보체(4,410m), 더 낮게는 팡보체(3,930m)나 디보체(3,710m)까지 내려간다. 숲속에 머물며 풍부한 산소, 충분한 음식물을 섭취하고, 휴식을 취하며 체력을 보강한 후 베이스캠프로 올라가 등정 시도를 하는 것이 좋다. 일기예보를 분석하여 ‘날을 잡는다.’</dl>

▲ 로체 사면의 빙벽을 올라 캠프3로 향하는 등반가들

 

캠프3에서 옐로밴드와 제네바스퍼를 올라 에베레스트와 로체 사이의 사우스콜까지는(7.925) 6~8시간 걸린다. 도착한 날 밤에 바로 정상으로 향해야 하기 때문에 운행은 새벽에 최대한 빨리 출발해야 캠프4에서 많은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이 운행부터 산소를 사용하는 것이 등정률을 높일 수 있다. 산소호흡기 게이지는 ‘1.5~2.5’로 맞춘다.

마지막 캠프는 영하 20도에, 티베트 쪽에서 불어오는 강풍으로 텐트는 심하게 흔들리고 텐트 밑에 잡석들로 누운 자리는 편하지 않다. 정상으로 출발하기 전까지 잠을 잔다기보다는 눈을 감고 있는 정도다. 산소사용은 ‘0.5~1’ 게이지가 적당하다.

세계최고봉 정상

 

등정 시도는 베이스캠프에 도착해 운행을 시작한 지 평균 4~5번째 운행에서 이루어진다. 정상까지는 10~12시간 소요되는데 다음날 정오경까지 정상에 서지 못한다면 하산시간을 고려해 중간에서 포기하고 되돌아서야 한다. 밤 9~10시경에 출발하는데 준비시간이 2시간 정도는 걸린다

 

 . 좁은 텐트 안에서 물을 끓여 차를 마시고 옷을 입고 장비를 착용하는 모든 행동이 힘들고 지겹기까지 하다. 시린 손과 강풍에 파르르 떨리는 텐트플라이 소리에 정상으로 향해야 할 자신의 의지는 점점 사그라진다.


여기에서는 경험 많은 등반가나 등반셰르파의 마음도 모두 같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위쪽의 정상보다는 아래쪽으로 무언가 자꾸 당긴다. 땀을 뻘뻘 흘리며 훈련하던 모습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자신이 여기에 왜 왔는지를 되새기며 마음을 다 잡아야 한다. 이때 동료의 말 한마디는 큰 힘이 된다.

“함께 가자, 정상까지.”

텐트를 나서면 이미 발코니 8,500m 로 향하는 불빛이 야간의 비행기 활주로 유도등과 같이 줄을 잇고 있다. 랜턴 불빛에 비치는 근거리의 앞만 보고 걷는다. 정신은 몽롱하고 마치 잠결에 꿈을 꾸는 것 같다. 단지 내 몸에서 진정 살아 있는 신체기관은 손과 발이 무지 시리다는 느낌뿐이다.

얼음 언덕을 올라 고정로프에 어센더를 끼우고 앞사람의 속도에 맞추어 오른다. 산소마스크로 숨쉬는 쉐쉐 소리만이 들린다. 코에서 올라 온 습기로 고글에 성에가 끼여 성가시게 한다. 장갑으로도 잘 닦이지 않는다.

드디어 발코니. 동쪽 티베트 고원으로 붉은 태양이 떠오른다. 얼마나 기다리던 햇빛인가. 모두들 눈 위에 앉아 한동안 빛을 즐긴다. 이곳에서 몇몇이 포기하는 1차 지점이다. 2차는 남봉 근처다. 남봉으로 향한다. 태양이 떠올라 추위는 가셨지만 반대로 빛에 의한 몸의 열기로 더위를 느끼고 졸음은 더 쏟아진다.


열 걸음 헤아리고 숨을 헐떡이고 또 다섯 걸음 헤아리고 머리를 처박는다. 도대체 언제 이 오름짓이 끝날까! 깊은 호흡을 하고 자신에게 숨어있던 새로운 에너지를 뽑아내야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정상에 오르겠다는 욕망이자 오기다. 정신력이자 의지다.

남봉에 올라 정상 쪽을 바라본다. 이제 그래도 끝이 보인다. 그러나 또 하나의 관문이 기다리고 있다. 힐러리스텝(Hilary Step)이다. 남봉에서 쓰던 산소통은 눈에 박아놓고 셰르파가 운반해 온 새로운 산소로 교환한다.

10여m 길이의 힐러리스텝은 초등 당시보다는 덜 어렵다. 그곳에서 30분 더 가자 오색 룽다가 더미를 이룬 정상이다. 정상은 단지 정상이다. 기쁨을 느끼기에는 하산길 걱정이 부담스럽다.

고통의 하산

고산등반 사고의 절반 이상은 하산 중에 일어난다. 1996년 남동릉에서의 대참사도 힐러리스텝에서 오르는 등반가와 정상에 선 후 내려오는 사람들이 만나며 생긴 병목현상으로 하산시간이 더욱 지연되며 거기에 악천후까지 덮친 결과였다. 극심한 체력소모로 후들거리는 다리는 안정된 아이젠 워킹을 방해한다. 자신의 아이젠이 반대편 신발에 걸려 실족, 추락하는 경우가 많다.

▲ 캠프3는 빙벽에 만들어진 세락의 단 위에 설치된다.

등정 당일 마지막 캠프까지 하산하고 다음날 캠프2까지, 3일째 베이스캠프까지 하산한다. 체력이 된다면 이틀 만에 하산한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하면 위험한 지대는 일단 벗어난 셈이다. 그러나 귀국하여 자신의 몸이 다시 해수면고도에 적응하려면 적어도 한 달은 걸린다. 그리고 고통스러웠던 순간은 잊혀지고 아름다웠던 풍경과 기억, 그리고 목표를 이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희망은 잠자고 있지 않는 인간의 꿈이다. 인간의 꿈이 있는 한, 이 세상은 도전해 볼 만하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꿈을 잃지 말자. 꿈은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에겐 선물로 주어진다’고 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음미하게 된다.

 

“나는 행복한데 내 와이프는 불행하다” 원정 앞서 해야 할 일은 가족의 이해 얻기

어떤 이는 말한다. “어떤 분야든 10여 년을 매진하면 전문가의 수준이 된다”고. 그렇다면 필자는 고산등반전문가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노멀루트든 새로운 루트를 시도하든지 간에 원정등반 출국에 임박해서는 안전하게 귀국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그 불안감은 생명을 가진 존재의 근원적 불안이며 또 이것은 가족, 직장 등 사회적인 관계의 무게에 따라 더 가중된다. 그 첫 번째가 가족이다. 내 꿈을 좇아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러 간다고 하면 한국적 정서의 가족 내에서 반기는 사람이 있을까! 텔레비전에서 본 히말라야 등반 장면에서의 눈사태, 코밑에 주렁주렁 고드름을 달고 힘겹게 오르는 등반가, 그리고 사망사고 소식 등에 가족들이 반기기는커녕 마른하늘에 웬 날벼락인가 하여 대꾸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히말라야로 떠나는 등반가는 눈물을 등 뒤에 두고 떠난다. 이것은 미국, 유럽도 마찬가지다. 올해 봄 시즌 아벨레 블랑(Abele Blanc·57세)은 8,000m급 14좌의 마지막 봉 등정을 위해 안나푸르나(8,091m)에 여섯 번째 시도를 하고 있었다.

“히말라야 등반을 떠날 때 당신 가족의 태도는 어떤가. 특히 부인은?”

내가 묻자 그는 멋쩍게 웃으면서 짧게 대답했다.

“나는 행복한데 내 와이프는 불행하다.(I’m happy, My wife unhappy)”

가족의 이해를 얻기란 쉽지 않다. 에베레스트에 대한 철저한 준비, 매일의 체력훈련 등 노력하는 모습에 조금씩 긍정적인 태도로, 그리고 고산등반에 대한 많은 대화로 자연스럽게 걱정과 불안감을 해소해 주어야 한다. 가족은 서서히 든든한 후원자가 될 것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한국의 어떤 등반가는 이러한 벽이 너무 크자 가짜 사고소식을 전하고 병원에 드러누워 깁스하고는 입원기간 두 달 동안 몰래 원정 출·귀국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 한국 원정대들의 전설처럼 내려오는 말이 “출국 비행기에 오르면 원정의 절반은 끝났다”다. 그만큼 준비절차와 과정이 쉽지 않다는 반증이다.

세계 최고봉은 그래도 가볼 만한가? 결정은 자신 몫이지만 경험자로서 이렇게 말해 줄 수는 있다. 그 체험은 당신의 DNA를 송두리째 뒤바꿔놓을지도 모른다

 출처 월간산

2011 6


출처 : 7대륙 최고봉 모임
글쓴이 : 세븐써밋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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