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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논평] 해병대원의 죽음에 부쳐 - 실성한 국방의 의무

대구담 2015. 12. 30. 02:57

[논평] 해병대원의 죽음에 부쳐 - 실성한 국방의 의무


2011.07.07.목요일
필독

 

 

 


 

 


 

30평짜리 아파트 안방만한 크기의 공간에, 개나 고양이 서른 마리를 가두어놓는다고 상상해보자. 모두 젊고 건강한 수컷이며, 방안엔 물과 사료만 공급된다. 감금기간은 2년이다. 2년 후 방문을 열었을 때 우리는 어떤 모습을 보게 될까?

 

태반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폐사했을 것이다. 매일같이 광포한 싸움이 벌어졌을 것이다. 일주일도 안 돼 다른 멤버를 물어죽이고, 심지어 뜯어먹는 일이 생길 것이다. 정상적인 포유류라면 이 비정상적인 공간에 갇히는 순간부터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했을 것이다. 살아남은 녀석들이 있다 해도 생물학적으로 살아있을 뿐 이미 미친 상태일 게 뻔하다. 일례로 식용을 목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키운 개들은 사람이나 다른 개들과 정상적인 소통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누적된 스트레스로 뇌와 신경, 행동양식이 망가져 있기 때문이란다.

 

상식적인 지성과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필자의 가정이 끔찍하다고 느낄 것이고, 이렇게 동물을 학대하는 일에 분노하고 반대할 것이다.

 


 


 

20대 초반의 남자들이 어느 순간 낡고 좁은 방안에 갇힌다. 20~40명, 많게는 60명이 어깨를 부딪혀가며 억눌린 욕구를 참아낸다. 속옷을 갈아입으려면 남들 눈앞에 태연히 자지를 꺼내야 하는 곳에서 개인공간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공간도 소유할 수 없다. 잠자는 시간을 위해 공간을 임시로 배당받을 뿐이다. 0.7평이다.

 

대한민국 군대의 내무반은 그 공간 자체가 범죄적이다. 우리 젊은이들은 그곳에서 서로를 괴롭히기 이전에 환경에 의해 학대받는다. 학대의 이유는 간단히 말해 값이 싸기 때문이다. 국가의 부름을 받은 국민이 한 달 배춧잎 두어 장 값으로 부림당하는 곳이다. 모든 게 비정상적이다. 밤에는 대형 세탁기에 들어가는 일이 일 년에 두어번 뿐인 해어지고 탈색된 모포를 뒤집어쓰고, 낮에는 20년은 너끈히 넘은 쓰레기 수준의 보급품을 주렁주렁 달고 훈련받는다.

 

아프리카 반군 수준의 보급품에 남미 노예노동자 수준의 임금, 고대 노예마냥 박탈당한 자유의지, 양계장 수준의 공간, 2년이라는 고정된 시간. 몸과 마음이 가난에 찌든 수컷들이, 그 근육과 힘줄들이, 남성호르몬이, 폭력성이, 짓눌린 에너지가, 날이면 날마나 보기싫은 서로의 얼굴 수십 개를 바라본다.

 

사고가 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왜곡된 환경은 왜곡된 시스템을 낳는 법이다. 남자들은 되도록 안전하게 살아남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주어진 환경만큼이나 비정상적인 관습을 고안했다. 군대에 끌려온 순서가 절대권력을 보장해주는 사회, 구성원 모두를 강도높은 수직성으로 찍어누르는 사회가 탄생했다.

 

알랭 드 보통은 근대 자본주의 이전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현대보다 훨씬 덜 불행했다고 진단한다. 타고난 신분이 부(副)를 결정하기 때문에, 자신의 가난을 창피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 누구든 능력대로 성공한다는 현대 자본주의의 신화는 가공할 불안을 생산한다. 재산이 능력의 성적표가 된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의 못남과 타인의 잘남에 좌절하고 분노하고, 스스로를 부정하게 된다.

 

알랭 드 보통에 따르면, 근대 이전의 영어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뜻하는 말은 '불운한 자(the unfortuned)'였다고 한다. 운명의 혜택을 못 받았다는 의미다. 반면 요즘은 실패자(loser)라는 표현이 일반적이다.

 

내무반은 경쟁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사회다. 누가 더 우월한 수컷인지 증명하기 위해 치고받고 싸워야 할 필요가 없다. 입대 날짜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입대시기엔 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운명의 요소가 있다. 내가 인격적 모욕과 폭력을 견뎌야 하는 이유가, 싸움에 져서가 아니라는 믿음. 이 믿음이 있기 때문에 군대에 갖힌 수컷들이 살아남을 수 있다. 내무반에 갖힌 수컷들이 자체적으로 좌절과 분노를 조절하는 구조를 발명하지 못했다면, 제대할 때쯤엔 다들 괴물이 되어있을 것이다. 

 

옹호하려는 마음 없다.
악습, 맞다. 그러나 악한 환경은 필연적으로 악습을 만들어낸다.

 


 


 

전우를 향해 조준사격을 한 김상병은 낙오자가 아니라 이탈자다. 그는 시스템을 부정했고,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했다. 이제 시스템은 그를 징벌하기로 결정한다. 형별의 이름은 '기수열외'. 결국 김상병은 탄약고에서 실탄을 훔쳐 자신을 내버린 시스템에 반란을 일으킨다.

 

기수열외에 대한 보도가 나온다. 폐쇄된 사회의 시스템이 대중에 노출되자, 죽은 해병대원의 유족들이 분노했다.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키다니..."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에 더해, 죽은 가족이 죄인이 되는 고통까지 감수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을 것이다.

 

 

죽은 해병대원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시스템을 대변했을 뿐이다. 죽인 해병대원은 시스템에 동의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꽃다운 나이에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누군가는 끔찍한 살인자가 되었다. 모두가 가해자이자 희생자가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게 된, 우리의 아름다운 젊은이들이. 참담하다.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의 본질적인 가해자는 군대 자체다. 더 본질적으로는 헐값에 우리 젊은이들의 고통을 팔아 남는 장사를 하는 데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우리의 조국이다.

  

국방의 의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인신매매가 공정하기라도 하면 조금은 덜 분노할 것이다.

 

군역은 몸으로 내는 세금이다. 돈을 내지 않는 자들이 몸을 빌려줄 리 없다. 대한민국은 군대에 의해 남들보다 더 많은 재산을 보호받는 자들이 국방의 의무를 배신하는 게 공공연한 비밀을 넘어 상식이 된 나라다. 보수를 자처하는 여당 국회의원 아들놈들 면제율이 40%가 넘는 나라. 이 작자들이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국방의 의무에 신성하다는 형용사를 갖다붙이는 나라.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말처럼 한 번 면제가 대대손손 면제로 이어지는 타락한 기득권이 소유한 '그들의 대한민국'.  

 

이런 나라에서 징병은 납치일 뿐이며, 군복무는 노예노동일 뿐이다.

 

가난한 자들의 고통으로 쌓인 산 위에서, 자격없는 지배자들이 천박한 돈과 권력의 잔치를 벌이는 동안 우리 젊은이들은 서로를 증오하고, 죽이고 죽어간다. 살아남은 자들은 영혼의 사형을 당한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는 실성했다.

실성한 국방의 의무는 오늘도 우리의 젊은이들을 내무반으로 연행해 간다. 

 

 


편집부부국장 필독
출처 : jkh1578
글쓴이 : 도야지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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