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총기난사사건으로 희생된 무고한 장병들이 남 같지 않아서 20여년 전 22사단 GOP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말하고자 합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경험과 견해이며, 시기적인 차이를 고려하여 이해하시면 될듯합니다.
저는 22사단 56연대 GOP에서 90년대 초중반에 근무했습니다.
지도를 보시면 22사단 경계구역은 북쪽으로 수직으로 올라가 있는데, 지리적으로도 우측은 해안선을 끼고 있고, 좌측은 북한이라 완전히 고립무원입니다.
입대하는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22사단 신교대를 수료한 장정 중 약 1/3 정도가 22사단 예하 연대(후에 대대로 발령)로 자대배치를 받고, 나머지는 후방 예비사단과 해안경비사단에 배정받았는데, 그때 당시는 나름대로 신교대에서 상위 1/3 안에 드는 신병들을 22사단에 남기고 나머지 2/3를 타 사단으로 보낸다고 할 만큼 22사단 배정 장병들은 자부심도 있고, 다른 사단으로 가는 신병들은 22사단에 남는 신병들을 부러워하기도 했습니다.
신교대에서부터 사단에서 벌어진 각종 사건사고와 열악한 여건을 익히 들어서 알고있지만, 그래도 대다수 장정들은 신교대를 수료할 때쯤 되면 기왕 군대 온거 22사단에서 근무하다 전역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민통선 이남의 예하 연대 또는 각 대대에 배치받고 생활하게 되는 신병들은 오로지 전방 철책근무 준비를 위해 돌아가는 부대 일정에 적응하는데 상당한 애로를 겪습니다.
전방 철책경계근무에 투입되면 오로지 경계근무에만 몰두해야하고 대규모 훈련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예비대에 주둔하는 동안 강도높은 훈련과 교육이 계속 이어집니다.
철책근무 자원을 채우기 위해 철책투입 6개월 전부터 신병들이 계속 배치되어 기수가 촘촘히 분포하고, 반대로 철책 투입 후부터는 웬만하면 신병을 받지 않기 때문에 터울이 많이 집니다.
이른바 꼬인 군번과 풀린 군번이 생기게 되며, 예비대에 주둔하는 동안 고참들은 철책에서 풀린 군번이 되어 상병 고참 쯤에 분대장 달고 왕처럼 군림하게 될 일병 선임들을 개잡듯이 잡습니다.
이번 총기난사사고와도 맥락을 같이 하지만, 일단 투입되면 총기와 실탄을 항상 휴대하니 함부로 구타나 가혹행위를 하기 어렵고, 그 전에 군기를 잡아 복종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고, 또 강도높은 교육과 훈련을 소화하기 위한 선임병들의 책임감 비슷한 구시대적 사고방식도 한몫 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다보니 매일 밤 얻어맞고 얼차려받는 일병들의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이등병들에게 전가됩니다.
이때는 학벌좋고 착하고 따위는 필요없고 오로지 나에게 폭력과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놈과 아닌 놈 두종류 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 안에서 친한 사람과는 전우애가 싹트기도 합니다만 아무리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살려고 해도 아주 제한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죠.
그런 시간을 보내고 전방 철책경계근무에 투입되는 병사들은 고립무원의 열악한 GOP에서 트로마를 안고 생활을 시작합니다.
경계근무는 주간조와 야간조로 구분하고, 야간근무 위주의 시스템입니다.
하룻밤을 2개조로(전반야, 후반야) 나누어 2인 1개조로 밀어내기식 근무를 하는데 한 초소에 두시간 근무서고 3~400m 떨어진 인접초소로 이동식 순찰 후 초소에 들어가 근무서고 또 인접초소로 이동하며 순찰을 도는 방식이었습니다.(이 정도가 군사기밀이라면 파리가 새죠)
그냥 서서 야간근무를 서는 것도 힘들지만, 개인소총과 실탄, 기관총, 탄약박스를 가지고 초소를 이동하고 근무를 서면 거의 체력과 정신력의 한계에 직면합니다.
더 힘든 건 겨울입니다.
산봉우리 높은 지점에 위치한 초소는 창문도 없이 개방된 구조여서 머리가 얼어버릴 정도의 추위에 떨어야 합니다.
핫팩이 지급되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실외와 다름없는 혹한에서 버틸 수 있는 건 오로지 옷을 많이 입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전반야 근무는 전원 투입 순찰 후 전반야 근무자가 해당초소에 남아 근무를 서고 자정 넘어 소초에 복귀해서 자면 되지만, 후반야 근무조는 자정쯤 기상하여 아침이 올 때까지 추위와 싸워야 하는데 자다가 일어나는게 너무 고통스러워 아예 잠을 들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근무를 나가기도 합니다.
이번 사건에 모두 무장한 병사들이 어떻게 한사람에게 이렇게 무방비로 당할 수 있냐고 의아해하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실상을 알면 이해가 되실겁니다.
경계근무용 실탄은 숏탄창이라고 하는 20발 들이 탄창에 장전하는데, 후방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실탄 1발은 전우 1명의 목숨과 같다는건 전방에서는 불문율입니다.
실탄을 매일 휴대하고 근무를 서지만 말 그대로 휴대하고 있을 뿐 삽탄, 장전하지 않습니다.
실탄의 분실과 고의적인 은닉을 방지하기 위해 경계용 탄창은 15발식 장전하여 탄창 상단에 종이테이프로 밀봉하고 소초장 도장을 찍습니다.(20여년 전 얘기인줄 알았는데, 이번사건 보도화면에도 그런 장면이 나오더군요)
그 탄창을 5개씩 지급받고(기관총 실탄 별도) 수류탄 1발을 탄입대에 넣어놓고 빈탄창을 꽂은 총으로 근무를 섰습니다.
실탄이 든 탄창을 총에 장전하면 종이테이프가 훼손됩니다.
비상시에는 바로 사격할 수 있지만, 평시에 이런 짓하면 나중에 혼납니다.
테이프가 훼손되면 근무 종료 후 탄창을 반납할 때, 소초장이나 부소초장(선임하사)이 실탄을 빼돌렸는지 확인하기 위해 탄창 안에 실탄을 일일이 빼 내어 15발을 확인해야하는데 뒤지게 욕먹죠.
실탄 분실을 막기위해 매주 토요일 마다 모든 탄창에 실탄을 다 꺼내에 15발이 맞는지 확인 후 다시 탄창에 15발씩 장전하고 종이테이프로 붙이는 일을 반복합니다.
‘적은 내 앞으로 온다’ 라고 마르고 닳도록 교육시키면서 정작 적과 마주하고 있는 병사들에게 몇발 안돼는 실탄과 그마저도 사고예방이라는 관리상의 편의(?)를 위해 삽탄, 장전도 못하는 형편이었습니다.
이번 사건에서 임모병장이 수류탄을 던지고 사격 가할 때 상황은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쉽게 이해가 되실 겁니다.
그는 미리 탄창을 결합하고 근무종료 후 복귀중이었을 겁니다.
수류탄의 폭발력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수류탄을 던졌을 때 이미 정상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을 것이라 짐작하고도 남을겁니다.
그 후, 미리 장전한 총으로 사격을 가했을 것이고, 다른 병사들이 제대로 대응사격을 하기 위해서는 탄입대에 든 탄창을 꺼내서 총에 결합하고, 노리쇠를 후퇴전진 시켜서 탄알 한발을 장전 후 조종간을 안전에서 사격모드로 전환하고 가해자가 누구인지 식별 후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겨야하는데, 아무리 숙달된 병사라도 10초 이내에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옆에서 수류탄이 터져 부상을 당한 후라면 더더욱 불가능하겠죠.
소초 내무반에 있던 병사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내무반 내에 있는 상황실에서 상황병이 근무를 하고 있지만, 실탄은 내무반 밖에 있는 탄약고에 있고, 열쇠는 소초장이 가지고 있는데 취침중이었다면, 즉각 실탄으로 무장하고 반응하기 불가능합니다.
내무반에서 자고 있는 병사들을 상황병(임병장 같은 마음을 먹은)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반대로 적의 공격에 즉각 대응하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그러고 보니 상황실 근무자들의 전화수신 구호가 ‘즉각반응, 찾고잡자 00소초 상황병 000입니다’ 였네요.
또한, 병장들이 하나 둘 전역하면 인원부족현상은 더 심해져서 경계근무강도는 나날이 증가하는 것도 구조적인 모순입니다.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피로가 누적될 수록 인원수는 감소하는 방향으로만 흘러가니 이런 모순을 방치하면 사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외부와 단절된 폐쇄된 내부반에서, 계급의식보다 나이의식이 강한 몇몇 고참병들에 의해 소대가 좌우되는 상황을 소초장과 역시 병에서 부사관이 된 선임하사가 동년배의 병사들을 장악하고 일사불란한 지휘계통을 유지하는 게 어렵습니다.
전후방이 따로 없는 현대전에서 GOP이 역할은 예전보다는 줄어들었겠지만, 여전히 북한은 우리나라를 무력으로 장악할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고, 무장한 특수부대원들이 지척에서 호시탐탐 침투의 기회를 노리고 있어 우리 군은 한치도 경계를 늦출 수 없지만, 여건이 개선되지 않으면 공염불에 불과합니다.
지금은 개선된 사항도 있겠지만, 제가 전역하고 나서 달에서도 보인다는 투광등도 설치되고 여러모로 자동화 설비가 설치되었다고는 하는데 앞으로도 개선될 여지가 없는 인력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레이더식 자동경비 설비 등 선진국에서도 검증된 첨단설비를 증설해야 합니다.
그때 당시에도 열상장비라고 하는 TOD가 있었지만, 짐승과 사람도 구분하기 힘들 정도라고 했습니다.
자동화 경계시스템의 일부는 민간업체에 외주로 운영도 가능하다고 생각되며, 대체복무제도를 활용할 수도 있고 민간부문의 신규 고용창출의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와 완전히 단절되고 고립된 근무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후방부대 인력을 순환근무 방식으로 보충하여 인적인 교류를 기하고, 외부에 오픈된 생활여건 조성 등으로 고립무원의 고참왕국, 왕따와 부조리가 판치는 소왕국을 개혁하려면 개방해야합니다.
인적인 교류와 유통은 폐쇄된 사고방식과 정착된 부조리를 무력하게 만듭니다.
정부를 비판하고 군을 비판하면 정상적인 국민을 종북좌빨로 몰아붙이는 놈들, 국민의 혈세로 떵떵거리며 위세부리고 골프치면서, 전작권 회수는 능력부족으로 시기상조라고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떠드는 똥별놈들이야 말로 종북은 아닐지라도 좌빨 반역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국민의 고혈을 빨고 국민을 등치는 놈들이야 말로 좌빨 반역자가 아니고 무었이겠습니까?
점진적으로 모병제로 전환해야 하며, 과도기적 단계로 우선 적접지역인 GOP에는 부사관 위주와 지원병 위주로 운영하고, 충분한 복리와 전역 후 과감한 인센티브를 주어야 합니다.
썩어빠진 기생충같은 똥별놈들 비율을 줄이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전우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일은 용서받지 못할 행위이지만,
제삼 제사의 임병장이 나올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줄이기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시급한 개선이 필요합니다.
다시한번 이번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신 후배 장병들의 명복을 빌며, 우리 군이 건강한 체질로 거듭나서
국민의 신뢰를 조속히 회복하고 저 자신부터 자식을 안심하고 군에 보낼 수 있는 시대가 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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