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제가 근무했던 부대입니다.
당시 이름은 뇌종부대였습니다. 저역시 GOP 초소 근무를 했었고, 지역이름이나 소초 이름은 오래되어서 다 잊어버렸습니다. 입대당시 대한민국 남자는 누구나 당연히 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군대.. 아무 망설임없이 지원했었던 부대에 신병시절 제가 겪었던 충격과 공포는 지금도 생생합니다.
최초 자대배치를 받는 날 강원도면 무조건 전방이라고 생각했던 저는 사방이 밀폐된 덜컹이는 트럭을 타고 위로위로 올라갔습니다. 비포장도로가 너무 덜컹거려 머리가 트럭 전창에 닿을 지경이었죠. 안에 있던 신병들은 긴장과 초조함에 서로 아무런 말도 없었습니다. 아마도 저와 같은 기분이었겠지요.
근무지까지 거리가 너무 멀어 중간에 하루밤을 자고 가야 했습니다. 너무 초소에 도착을 했는데, 주변환경과 건물들을 보고 '우리나라에 이런곳이 있어나' 싶었습니다. 무슨 전쟁지역 같았습니다. 날씨가 추워서 군인들은 복면을 썻서 더 무서워 보였었죠.
거기서 어느 군종병이 '여러분 달걀후라이 먹어본적 없죠? 오늘은 제가 달걀 후라이 해드릴께요' 하더군요. 참 친절한 분같았습니다. 당시가 95년도 였는데, 식판은 스펀지에 빨래비누 뭍혀서 씻었고, 전방의 모부대는 설겆이를 산속 계곡에서 했습니다.
다음날 기상해서 저는 더블백을 메고 더 위로 위로 올라갔습니다. 트럭을 타지 않고 도보로 이동했는데. 인솔자 포함 세명이었습니다. 눈보라가 치던밤이었습니다. 인솔자는 저희한테 양옆은 지뢰밭이니 길이 아닌곳은 들어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늦은밤 근무지에 도착한 저의 군생활은 두려움과 불안감을 안고 그렇게 시작되었죠.
전방에서 특이한 점은 취침시 머리를 관물대 속에다 처박고 잔다는 겁니다. 그 이유는 초소에 수류탄이 터지더라도 최소한 사망자를 줄이기 위해서 입니다. 수류탄이 바닥에서 터지니 다리는 다치더라도 목숨을 건질수가 있죠, 또 다른 이유는 과거에 이북에서 간첩들이 내려와서 군인들 목을 따고 가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것을 예방하기 위해서 라고도 합니다.
무장공비 침투사건때도 투입이 되었었습니다. 2개월정도 최악의 조건에서 활동을 했습니다. DMZ 수색도 했었습니다만, 수색 후반부에 사고가 있었습니다.(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전방에서는 항상 수류탄과 총알을 소지하고 있으니, 간부들이 민감할수밖에 없습니다. 구타는 절대 금지 되었습니다. 물론 사람대 사람으로 감정이 격해져서 주먹이 오고 가는 경우는 있었습니다만, 후방에서 처럼 줄빠따나 가혹행위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당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전경, 의경 등이 구타 가혹행위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 군가산점관련 토론회에서 어느 패널분이 그러더군요 '가고 싶은 군대를 만들어야 한다' 고....
군대는 목적 자체가 유사시 적을 살생하고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위해 존재하는곳입니다. 즉, 극한의 상황에서 적을 죽이는 훈련을 하는 곳이죠. 그렇기 때문에 PRI 나 방독면 구보를 하면서 거품을 물어도 '전시를 가정한 훈련' 이기 때문에 피나가고 알이 배기고 이가 갈려도 할수밖에 없는 곳입니다. 그런곳을가고 싶어 하는 곳으로 바꾸는 방법이 뭐가 있을런지 참 궁금합니다.
제가 제대를 하고 사회생활을 해보니, 제 군복무에 대해서 회의감이 많이 듭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당연히 거쳐야 했던 군생활을 누군가는 너무 쉽게 열외가 되었다는 겁니다. 병역특례라는 제도로 일류대 나온 친구들은 군대를 가지 않고 곧바로 IT 업체에서 근무하더군요. 이게 우리나라 IT를 발전시키기 위한 제도였던거 같은데, 솔직히 '내가 왜 이런제도를 몰랐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은 디스크, 우울증 등 입증하기 힘든 질환으로 끈질기게 시도해서 신체등급 4급을 맡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식사중에 어느 여성분이 자기 아들이 몸도 건강한데 4급 받기 위해서 노력했다... 는 이야기를 웃으면서 하더군 요. 먹던 국그릇을 면상에 집어 던지고 싶었습니다.
아들이 5살입니다. 이 녀석에게 당당하게 군대를 가라고 해야 하나 .... 고민입니다.
ps. 군제대를 하고 누구나 처럼 저역시 몇개월간은 군대악몽에 시달렸었습니다. 일어나보니 '휴 ~ 내가 제대했었지' 라고 안도하거나, 꿈속에서 다시 군대에 끌려가는 꿈도 자주 꾸죠. 꿈속에서는 나는 이미 제대했다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아무 소용없이 신병교육대로 다시 끌려가는 꿈.. 많은 제대자들이 같은 경험을 했을 겁니다.
언젠가는 제대후 복학전 하릴없이 기웃거리다가 해질녘 버스를 기다면서 멍하니 '내가 지금 어디있지' '내가 뭘하고 있지' 라는 공허함이 자주 밀여왔습니다.
과연 국가는 제대군인들의 사회적응을 위해서 눈꼽만큼이라도 관심을 가졌는가? 저는 전혀 없었다고 봅니다.
당시 1~2만원의 월급을 주면서 국방부의 소모품으로서 모진훈련과 훈련이 없는 날에는 막노동을 시킨 당시 국가와 정치인들은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이 없었을까?
요즘은 장병월급도 많이 올라 병장정도 되면 월30여만원의 월급도 되고 군복도 멋있어지고 보급품도 좋아졌다고 하더군요. 국가는 이들의 사기를 높여주고 끝까지 보살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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