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로망, 줄보(Julbo) 스포츠 글라스
세계적인 유명 산악인들의 사진을 보면 고산(高山) 등정 시에 쓰고 있는 스포츠 글라스가 거의 한 가지입니다. 우리의 산악 영웅인 엄홍길, 허영호 대장을 보아도 그 건 똑 같습니다. 바로 그 스포츠 글라스가 프랑스제 줄보(Julbo)입니다. 참 묘한 이름이지요.
그 줄보란 브랜드는 Julbo 사를 창립한 분의 이름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그 분의 이름은 Jules Baud입니다. “Jules“라고 쓰고 ”줄“로 읽습니다. 과학소설가 줄 베르느(J. Verne)의 줄도 Jules이고, 이건 프랑스의 이름입니다. 그럼 Baud는? 이건 뭐라고 읽지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같은 단어는 컴퓨터 통신에서 이론적인 통신 단위로 초당 신호(signal) 요소의 수를 나타내는 용어인 보(baud)입니다. 이걸 ”바우드”로 읽으면 순식간에 촌놈이 되지요.^^;
하여간 Julbo는 Jules Baud란 이름의 앞부분에 있는 세 개의 철자와 뒷부분의 발음을 합쳐서 새롭게 만든 단어인 것입니다. 줄보의 역사와 회사의 특징은 이런 것입니다.
- 이 제품은 이런, 약간 허접해 보이는 상자에 담겨 나옵니다.
포장 상자가 허접하면 제품도 허접한가?^^; 결코 아닙니다. 결코 허접할 수 없는 회사란 증거는 위 사진의 왼쪽 위의 구석에서 발견됩니다. 그 부분을 아래에 좀 더 크게 확대해 놨습니다.
줄보는 1888년에 세워진 회사입니다.-_- 고등학교 역사 시간에 “하나팔구사”로 외우게 했던 1894년(동학란이 일어난 해)보다도 6년이나 더 이른 때에 생긴 회사입니다. 정말 이건 그 유명한 쌍팔년도에 생긴 회사인 것입니다.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존재하면서 실로 최고의 산악용 스포츠 글라스로 자리 잡은 고급 제품이지요.
120년동안 망하지 않고 꾸준히 그 영역을 넓히고 다각화시켜 나간 이 회사, '줄보'엔 다른 경쟁사들이 감히 따라오지 못 하는 뭔가가 있었다고 봐야만 할 것입니다. 5년을 지속하는 중소기업이 많지 않고, 10년을 버티는 대기업이 흔치 않은 게 기업의 생리입니다. 그런데, 120년이라니요?
- 맨 위에서 보여드린 이 제품의 이름은 “마이크로포 GT"입니다. 검정색이라 블랙이고요.
14만 원이면 꽤 비싸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요즘 허우대만 멋지고, 역사성이라고는 별로 없는 몇 스포츠 글라스의 가격들 중에는 이보다 훨씬 더 비싼 것들이 즐비하지요.
하긴 저도 이 가격보다 더 비싼 선글라스, 스포츠 글라스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특별한 스포츠 글라스를 앞에 두고, “이거보다는 내 오클리(Oakley)가 더 낫네.” 어쩌고 하는 소리를 하면 그건 정말 망언이고 망발입니다.-_- 왜냐하면 그건 값 좀 나가는 최신 제품의 선글라스를 끼고, 클래식한 B&L 레이밴(Ray Ban)의 웨이페어러(Wayfarer)를 쓴 사람 앞에서 깝죽대는(?) 것과 똑같은 경망스러운 짓이기 때문입니다.^^
- 선글라스의 전설(傳說) B&L 레이밴 웨이페어러.
허접한 듯 보이는 종이 상자에서 줄보를 꺼내봅니다. 여기서부터 얘기가 좀 달라집니다. 줄보의 플라스틱 케이스는 제가 본 세상의 어떤 스포츠 글라스 케이스보다도 에어로다이내믹한 모습이며, 가장 공간을 잘 활용한 케이스이고, 또 아름다운 라인을 가진 케이스이기 때문입니다.
이 반 투명의 케이스를 열면 비로소 산악용 스포츠 글라스의 전설이자 모든 산악인의 로망인 줄보가 그 모습을 나타냅니다.
- 줄보는 이 자체로 하나의 예술품이라 하겠지요. 레이밴 웨이페어러가 그렇듯이...
- 그럴싸하게 생각을 해서 그런지, 심지어는 “환상적”이라는 생각까지 들게 하는 모습입니다.
- 위에서 내려다보니 이 제품의 캐릭터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측면의 바람막이가 이제야 보이는군요.
이 측면 바람막이는 바람도 막지만 측면으로부터의 산란광(stray light)도 막아주기 때문에 시야를 더 명확히하는 데도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이 바람막이는 탈착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훼손 시에는 당연히 교체할 수 있지요.
다리의 뒤쪽에는 약간 부드러우면서 조절이 가능한 귀걸이가 달려있습니다. 줄보를 쓰면 아주 편안하고도 탄탄하게(?) 이 스포츠 글라스가 얼굴에 밀착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줄보의 렌즈는 다양하게 교체할 수 있습니다만, 원래 줄보는 고산용으로 많이 사용되기 때문에 대개 아주 어두운 편인 미러(mirror) 코팅의 카테고리 4의 렌즈들이 많이 사용됩니다. 원한다면 다양한 줄보의 렌즈 중에서 스킹 시에 적합한 카테고리 2나 3의 렌즈를 끼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카테고리 4의 렌즈는 운전에는 적합하지 않아도 밝은 날의 스킹에는 의외로 좋지요. 아주 눈이 편안한 가운데 스킹을 할 수 있으니까요.
타이태늄과 니켈의 혼합 소재로 알려진 가볍고도 강하면서, 탄력성까지 좋은 다리(템플)와 두툼한 귀걸이의 조합도 왠지 클래식하지 않습니까? 이 귀걸이는 마음 대로 휘어 조절할 수 있고, 혹시나 액티브한 동작에서 스포츠 글라스가 벗겨지지 않도록 액세서리로 함께 제공되는 줄(폴리에스터 끈)을 매달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특히 고산 등산 중에 어떤 형태로든 스포츠 글라스를 잃어버리면 그것은 곧바로 설맹(雪盲)의 위험으로부터 기인하는 사망의 가능성까지 초래하기 때문에 그 때의 줄은 생명끈일 수도 있지요.
- 바람막이를 안쪽에서 본 것입니다.
강한 측면 바람을 잘 막아줄 수 있게 만들어져 있고, 그곳을 완전히 차단하지 않고, 적절한 통기가 되도록 조절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측면 쪽으로도 살짝 통기가 되어야 렌즈 안쪽에서의 김서림(fog)이 더 효과적으로 방지되니까요.
- 줄보의 코받침(nose pads)은 상당히 세련돼 보입니다.
이 코받침은 말안장(saddle)식 코받침이라고 합니다. 이게 앞뒤로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코높이에 따라서도 잘 밀착될 수 있도록 해 주지요.
- 80년 대식 달걀형(oval) 미러 렌즈의 모양이나 타이태늄 합금의 템플, 그리고 가죽 바람막이의 모양이 적절히 조화되어 이의 클래시컬한 아름다움이 완성되고 있습니다.
- Made in France since 1888
중국제가 아닙니다.^^ 중국에서 만들면 모양은 똑같이 만들 수 있고, 이윤이 많이 남습니다. 하지만 그런 짓은 안 했습니다. 1888년 이후 지금까지 프랑스에서 모든 것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한 때 Serious Alpinist로서 산에 다니셨던 분들이라면 이미 줄보의 제품을 사용하고 계실 것입니다. 하긴 스키어 중에는 산악인들도 많지요. 왜냐하면 산을 오르는 행위로서의 등산(登山)과 산을 내려오는 행위로서의 스키/스킹은 실은 동전의 양면이기 때문입니다.(우리 나라에서는 아닐 수도 있겠지만 이건 알프스나 히말라야에서는 통용되는 얘기죠.^^) 스키장에서 가끔 줄보를 쓴 분들을 봅니다. 그 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오, 산악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저 스포츠 글라스로 확인하고 싶어하시는 분.’이라고 말입니다.^^ 한 때 산을 탔던 제게는 그런 자부심을 가진 그 스키어가 대단히 멋져 보이거든요.
요새는 등산 장비점에서 조차 이런 클래식한 제품만이 아닌 매우 현대적인 스포츠 글라스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남성의 로망이 아이스 하키인 것처럼, 많은 남성의 로망이 포르쉐인 것처럼, 모든 남녀의 로망이 고고학자인 것처럼, 그리고 모든 고고학자들의 로망이 박물관장인 것처럼, 이 줄보 스포츠 글라스는 산을 좋아하거나 좋아했던 모든 사람들의 로망인 것입니다. 1888년 이래의...-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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