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다시 요트에 대한 관심이 살아 났는데, 마침 한달여 전에 <2008코리아컵 국제요트대회>이라는 독도를 코스의 일부로 삼는 요트경기대회가 열린다는 것을 최근에 가입한 한 요트 카페에서 알게 되었다.
몇년 전에 울릉도에 가서도 날씨가 않좋아 독도를 못 가봐서 독도도 가보고 싶었지만, 특히 장거리 항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이 너무 좋은 기회라서 그 공고를 보고는 이 요트 경기에 크루/선원으로 참가를 하고 싶다고 글을 올렸고, 나중에 다른 개인적인 루트를 통해서 부산의 한 요트 선주로부터 크루를 구하니 같이 경기에 참가하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한두번 만나자는 얘기는 있었으나, 최근에 있은 나의 말레이지아 여행과 망막박리 관련 재수술로 인해서 팀중에 선주를 포함한 두사람은 사전에 연습을 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나는 대회날까지 배도 다른 사람들도 한번도 만나지 못하고 경기 전날에야 경기가 벌어질 포항에 도착해서 만나게 됐다.
<경기 전날 처음 만나서 개막식 후 만찬을 마치고 만찬 무대 위에서 환하게 웃으며 기념 촬영>
10월23일에 시작하는 제1구간은 포항에서 울릉도이고, 24일 밤에 독도로 운항해서 다음날 아침에 독도를 출발하여 울릉도로 돌아오는 것이 제2구간이다.
시합은 ORC와 OPEN두가지 클래스로 경기를 한다.
전날인 10월22일 오후에는 포항 북부해변 앞바다에서 마커를 3바퀴 도는 <포항요트대회>가 있었다.
<포항 북부해변 앞바다에서 펼쳐진 포항요트대회: 내항 방파제에서 찍은 사진>
같은 저녁에는 개막식과 만찬, 불꽃놀이 등이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좋던 날씨가 막상 우리가 요트를 타려고 하니 전날인 22일부터 비가 오기 시작하고, 게다가 바람은 별로 없었다.
우리팀은 인원수 부족으로 포항요트대회에 참가하지 않았다.
그러니 우리는 한번도 연습 훈련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처음 만나서 이번 대회에 출전을 하는 것이었다.
배는 출전 신청한 배 중에서 가장 작게 보이는 30피트(9미터) 짜리였다.
멀리서 보니 돗대도 제일 낮다.
신청은 제일 먼저해서 오픈클래스 1번.
<포항시 항구내의 임시 폰툰에 계류하면서 연기된 경기 시작을 기다리는 오픈클래스 1번 트리니티(Trinity)>
23일 오전에 나와 또 다른 참가자는 우리 배에 있는 휴대용 해양VHF라디오를 여러가지로 테스트해봤으나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냈다.
가끔 들리기는 하나 전혀 송출이 되지를 않는다.
저녁에 도착한 선주는 얼마 전까지 됐다는 얘기를 하고.
선주가 가져온 휴대용 네비게이션은 간단한 지도와 위치를 나타내 보여주고 있다.
스키퍼(선장) 회의에서 매(홀수)시간에 대회본부 측으로 해양VHF라디오의 72번 채널을 통해서 배의 위치와 진행방향과 속도를 보고하기로 했다고 한다.
대회본부에 상황을 알리고 라디오를 하나 빌리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그러면 우리는 장비 자격 미달로 출항을 못 할 수 있다는 얘기에 나도 다른 사람들도 더 이상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
또, 1번 제노아를 올려보니 돛을 이은 재봉선이 꽤 많이 튿어져 있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빌려서 긴급한 상황에서 돛을 붙이는 돛용테이프로 임시 처치하였다.
23일 아침 워낙 출발 시간은 아침 10시였으나 11시로 12시로 다시 오후 2시로 연기되었다.
울릉도 근해에는 바람이 20노트 이상 불고 파고가 4미터라서 아침에 떠나는 대형여객선도 출항을 금지 당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오히려 출발지인 포항에서의 바람이 너무 약한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마침내 2시에 깃발이 내려가고 포항시 북부해안 앞바다에 설치한 마커를 지나 배들이 출발하였다.
우리는 거의 맨 뒤에서 출발을 했다.
아무래도 영일만 내의 육지로 들어온 곳이다 보니 바람이 아주 약했다.
마커들을 한 바퀴 돌고, 다들 영일만 입구쪽으로 향했다.
선두에 출발한 배가 하나 이미 방파제로 가는 중간에 있는 양식장의 그물에 걸렸는지 돗을 내리고 해안경비정과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우리는 11개국에서 모인 사람들이 모여 구성된 37개팀 중에서 간신히 끝에서 두째인가 세번째로 마커를 벗어나서 영일만의 방파제을 느리게 느리게 벗어나며 뒤에서 네번째인가를 했다.
그 사이에 배의 선장을 제외한 세명의 선원들이 모여 제노아를 내리고 앞 배들을 따라 스피네커를 다시 올렸다.
오늘 바람은 남동풍이라고 한다.
우리가 영일만 방파제을 나갈 때쯤에는 벌써 세시간 이상이 지났고, 선두그룹은 이미 보이지를 않았다.
다만 멀리 띄엄띄엄 북동쪽 울릉도를 향한 돛단배들의 돗이 보였다.
그리고 석양은 지기 시작했다.
5시가 되어서 홀수 시각이기에 다시 대회본부에 라디오교신을 시도했으나 라디오는 당연히 작동을 계속 않하는 지 전혀 반응이 없었다.
그래도 앞과 뒤에 배들이 있고 아직 육지는 우리 곁에 있었다.
또 휴대전화기를 통해 다른 팀과 교신도 할 수 있었다.
영일만의 바깥 방파제를 지나서야 바람도 조금 나아지는 것같고 조금 있으면 어두어지니 그동안 올렸던 스피네커를 내리고 어둠에 준비해서 제노아를 올렸다.
그런데 아무래도 바람이 시원찮아서 뒤에서 스피네커를 계속 달고 오던 배가 우리를 따라 잡고 지나갔다.
얼마 후 우리는 다시 제노아를 내리고 스피네커를 올렸다.
그러는 사이에 시간은 가서 어두운 저녁이 됐고, 육지는 점점 멀어져 갔다.
아직도 바람도 약하고 파도도 크지가 않았다.
그래서 여유로운 기분으로 저녁으로 라면을 끓여 한그릇씩 먹었다.
붉은 가는 초생달이 어둡게 오른쪽 인가에 낮게 드리워져 있고, 가끔 보이는 오징어낚씨배들의 불은 온바다를 환히 비췄다.
시간이 가면서 이제 제법 바람도 좋아서 스피네커는 팔랑거리기 시작하고 배는 잘 나아가고 있었다.
라면을 먹고 나는 피곤해서 객실에서 누워 잤다.
얼마쯤 잤는지 모르는데 깨우는 소리에 일어나서 보니 시간이 많이 흐른 밤이고, 그동안 수고한 젊은 두사람이 객실로 들어오더니 나와 같이 자고 있던 선주와 교대를 하자고 한다.
그래서 주섬주섬 겉옷을 입고 그 위에 구명조끼를 입고 선실에서 나와 콕핏으로 나왔다.
선주가 조타를 하고, 나는 그저 같이 앉아 가끔 얘기하면서 혹시 있을 지 모를 어망 등에 주의하면서 밤항해를 즐기고 있었다.
하늘은 맑고 별들은 가까이에 크고 밝게 떠있었다.
어렸을 때에 봤던 북두칠성이 우리 앞과 위에서 환하게 우리를 비추고 있었다.
내가 보초를 서는 동안에 바람이 약간 쎄진 듯 하다.
앞에 편 빨간색의 스피네커는 쉴새없이 팔랑거리 움직이고 배는 더 잘 달린다.
그런데 아무래도 선주가 너무 자주 조정을 하는 것 같아 혹시 자는 이들을 깨워 스피네커 돗을 내리고 제노아로 바꾸는 달아야 하지 않겠냐고 물었지만, 전혀 문제가 없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에 배가 두어번 깊이 기울어진다.
갑자기 선주가 나보러 스피네커 돗의 오른쪽 쉬트(줄)을 잡아 당기라고 한다.
그때 나는 칵핏의 앞부분에 앉아 있었고 쉬트는 콕핏의 맨뒤에 묶여 있었기에 뒤로 조심스레 기어 가서 클릿에 묶여진 쉬트를 푸는데 이미 배가 기울어지면서 스피네커의 왼쪽 부분이 바다에 닿고있다.
배가 많이 기울어지니까 객실에서 자던 두사람도 놀라면서 무슨 일이냐며 일어 났다.
일어난 두명이 스피네커를 물에서 들어올리면서 뒤에서 쉬트를 풀었던 나도 앞으로 오라는 소리에 앞으로 갔다.
나는 두 사람에 의해 배위로 끌어 올려진 바람에 휘날려 펴지는 스피네커를 조금씩 모아서 주섬주섬 바람에 날아 열리는 선상창을 통해서 앞객실로 꾸겨넣으면서 창을 닫기에 바뻤다.
그래도 큰 문제없이 일단 스피네커를 인양해서 앞객실에 넣고, 이제는 다시 제노아를 올리고 배를 다시 북동쪽으로 조정한다.
내가 잠깐 조타를 했는데 너무 오랫만에 하는지라 배를 안정되게 조정하지를 못하고 제노아가 역방향으로 바람을 먹는다.
그래서 다시 다른 사람이 방향타 뒤에 앉아 조타를 하고, 나는 콕핏에서 도움이 되지 못하고 꾸뻑꾸뻑 존다.
얼마 후 나는 다시 객실에 들어와 앉아서 자고 있었다.
가끔 흔들리는 배에 심하게 등을 배의 측면에 치면서.
소변을 보는데 너무 흔들리는 데다가 화장실이 작고 바닦이 기울어져 있으니 심하게 흔들릴 때마다 부딪히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노력을 해야하기에 정작 소변은 싸다말다를 반복하면서 오줌발을 여러 번에 나누어 눌 수 밖에 없다.
(나중에 들으니 한 젊은이는 10시간 정도를 오줌을 참았다고 하고, 다른 젊은이는 어차피 조타 위치에서 파도를 여러번 뒤집어 쓰고는 조타석을 비울 수가 없어서 그냥 앉은 체로 옷위로 소변을 눴다고 한다.)
꾸벅꾸벅 졸다가 보니 이미 새벽이고 주위에는 아무 것도 없다.
쎈 바람에 주변 바다는 온통 흰 거품으로 덮힌 파도들만 가득하다.
바람소리와 펄럭이는 축범된 주 돗.
언제인지 기억에는 없는데 젊은 두사람이 객실 위에서 주돛을 내려서 축범하는 것을 나는 콕핏에 앉아서 지켜보던 기억은 난다.
또 객실에 앉아서 졸다가 남서로 가지말고 일단 서쪽으로 가서 육지에 가까이 가서 구명을 청하자는 얘기를 했던 기억도 난다.
선주가 그렇게 하고있다고 대답했던 기억도 나고.
어쨋던 우리는 경기중이었으므로 돗만을 사용해서 울릉도를 향해서 천천히 진행하다가 밤사이에 빠르게 북동쪽으로 항해했고, 절반 정도를 지나서는 휴대용 네비게이터에 물이 들어가 작동 하지 않는 관계로 위치 측정도 않되고 물론 처음부터 작동을 않는 VHF라디오로 인해 통신이 두절된 상황에서 바람과 파도는 쎄져서 축범을 하고 회항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나도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입밖에는 내지 못했는데, 도움이 되지 못하는 내가 객실 안에서 졸고있는 사이에 다른 이들이 결정을 내린 것이다.
아마도 나중에 듣기에 새벽 7시 정도라고 기억한다.
이때는 이미 주돗이 축범되고 제노아를 함께 올리고 달리다가, 나중에는 제일 작게 축범된 주돗에 제노아도 없이 달리다가 마지막에는 주돗을 다 내리고 앞에 스톰쎄일 만을 올리고 엔진을 함께 쓰면서 커다란 파도들을 넘고 또 넘었다.
새벽이 지나고 낮이 되고 우리는 계속 아무거도 아무도 없는 망망대해를 계속 바람과 파도와 아마도 조류와 싸우며 남서행을 계속했다.
조류와 바람이 진행방향을 얼마나 바꾸는 지에 대한 정확한 계산도 없이 네비게이터의 위치 정보도 없이.
돗대를 세운 쇠줄에 바람이 울고, 핑핑거리고, 가끔씩 큰 파도를 지나서 다음 파도 사이에 배의 앞부분이 떨어지면서 나는 배바닥이 깨지는 듯한 <꽝>소리.
도움이 않되는 나는 아예 객실에 앉혀놓고 젖은 자신의 옷을 대신해서 방수가 잘되는 내겉옷까지 빌려서 계속 파도와 바람과 싸우는 젊은이.
배속에 앉은 나는 반대쪽 벤치에 두다리를 밀어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하고 가끔씩 뒤로 넘어가서는 등으로 등뒤의 벽에 온몸을 부딪힌다.
어느새 선주의 얼굴에는 붐대에 맞아서 생긴 기다란 피자욱.
다른 이들은 심하게 팔을 부딪히거나 머리를 찧고.
현재까지 아픈 등짝과 부딪혀 혹난 나의 머리통과 이삼일이 지난 어제까지 부어서 저릿저릿하던 이제야 대강 풀린 내 손가락들.
이러다 죽는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다른 이들도 비슷하였으리라.
다들 그런 말은 입밖으로 내지를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작동 않하는 줄 아는 VHF라디오를 잡고 다른 사람에 이어 나도 다른 배를 불러본다.
<메이데이 메이데이 메이데이.
여기는 트리니티.
듣는 사람있으면 응답바랍니다.
......>
선주가 아마도 새로 구입해서 가져온 TRS도 사용해 보는데, 이 전화기는 우리 연해 거의 전부에서 넓은 범위 내에서 작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 역시 전혀 아무도 응답을 않한다.
혹시나 탐색선이나 비행기가 떳나봐도 우리 주위는 온통 바다 뿐이다.
보이는 것은 하얀 포말을 쓴 넘실대는 파도이고, 들리는 것은 바람과 바람에 우는 돗대 세움줄과 가끔씩 높은 파도에서 파도골로 떨어지는 배바닦의 폭파음.
이런 상황이 되니 입고 있던 편하고 따뜻함을 제공하는 구명조끼도 새롭게 보였다.
우리가 입고 있던 조끼는 워터스키등의 물놀이에 쓰이는 사용하기가 편하기는 하지만 대양에서 장시간 떠있을 수 있는 목받이가 되어 있고 앞뒤로 부피가 두껍게 생긴 부양력이 큰 원색의 바다용 구명조끼가 아니였다.
이제 혹시라도 배가 침수하면 구명정이나 딩기도 없는 상황에서 이 조끼에 의존해서 몇시간이나 견딜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에휴~
이러다가 죽는 거구나...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이 위기를 벗어나도록 내가 기여를 할 수 있을까라는 구체적인 노력을 못한 것이 지금 생각해 보니 아쉽다.
이렇게 몇시간을 또 달리던 중 멀리서 다른배가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진행방향과 비슷해서 계속 가는데 결국 우리 눈에서 그배는 사라져 없어졌다.
다시 계속 포항 아니면 그 북쪽의 영덕으로 생각되는 지점을 향해서 달린다.
다행히 배의 엔진은 작지만 전혀 변하지 않고 엔진음을 뱉아낸다: 통통통통 통통통통...
그러다가 언제인가 객실에 앉아있는데, 육지가 보인다고 한다.
아~
이제 살았나 보다.
그런데 내눈에는 육지가 보이지를 않는다.
그저 사방에는 온통 하얀 파도 뿐.
그래도 자세히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우리 진행 방향에 조그만 까만 물체같은 것이 있기는 하다.
나중에 보니 포항 앞바다에 서있던 커다란 화물선의 윤곽이었다.
이제 다들 마음이 놓이고 여유가 생겨서 나도 잠간 배를 조타해보지만 큰파도를 직각으로 가르고 넘어서며 약간 틀어서 파도를 내려가고 다시 다음 파도를 직각으로 찢는데 아무래도 쉽지가 않다.
그래서 조금 해보다가 포기하고 다시 다른 젊은이에게 조타를 넘기고.
쉴새없이 밀리고 파도를 가르는 통에 그 점이 이리 저리 피해가고 있지만.
콕핏에 앉아 이렇게 진행을 지켜보고 있기를 두시간 하니 어느덧 그 물체는 훨씬 커졌다.
그러다가 한번 파도에 물을 뒤집어 쓰니 새로 입은 자켓과 바지를 통해 온통 몸이 속까지 젖어 바람에 추워진다.
미리 방수옷을 잘 챙겨오라는 말이 이때 다시 생각난다.
그런데 멀리서 우현 앞방향에서 배가 오는 것 같다.
하얀 동력선으로 보이는 배가 우리 쪽으로 진행하고 있다.
우리는 계속 까만 점을 향해 전진하고.
이윽고 하얀 배가 우리 뒤쪽으로 전진하다가 방향을 꺽어서 우리를 향해 따라온다.
확실히 우리를 발견한 것이다.
다가오는 커다란 하얀 배는 해양경찰선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휴우~ 살았다.
경찰이 이렇게 반가울수가 없다.
이때가 출항 다음날 오후 5시 정도였던 듯.
우리배가 <씨 벤춰>냐고 물어온다.
아니다 우리는 <트.리.니.티.>라고 대답한다.
그쪽은 확성기를 써서 우리는 육성으로.
우리가 이구동성으로 대답하니 한사람만 대답하라고 지시가 온다.
우리배를 통신을 통해 조회하더니, 우리배의 아이덴티티를 확인한 경비정은 <씨 벤처>라는 다른 대회 참가정의 구조요청을 받고 우리 지점에서 40마일을 떨어진 곳으로 구조하러 가는 도중이라고 우리에게 말한다.
이어 우리배가 뭐가 문제인지, 자력으로 귀환할 수 있는 지를 묻는다.
선주는 돗도 찢어지고 엔진도 잘 않되고 다 탈진하여 우리 배는 예인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경비정은 구조요청을 받은 곳으로 진행해야 하니 우리보러 예인선을 기다리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엔진을 다시 키고 이제는 포항 앞바다로 확인된 원래의 목표를 향해서 다시 전진한다.
경비정은 한참을 우리를 따라오다가 사라지고, 얼마 있다가 원래 경비정보다 훨씬 작은 경비정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선주가 앞에서 경비선에서 보내온 엄청나게 굵어서 우리배에 걸지를 못하는 밧줄을 마스트에 걸었지만 그 큰 밧줄은 선두의 보호대 밑으로 고정되지 않아서 다시 작은 밧줄을 보내와서 간신히 배에 고정하고.
이런 작업만 짜증이 날 정도로 지리하게 수십분에 걸려서 진행되고.
선두에서 밧줄을 잡아 거는 사람은 예인된 적도 없고 따로 예인되는 경우에 대한 사전 지식도 없는 듯 하다.
다들 앞으로 가서 내가 빈 조타석으로 가서 배가 서로 부딪히지 않도록 좌우로 배를 조정했다.
<우리를 예인하기 위해 출동한 해양경찰선에 우리 배를 묶어 고정하면서>
이윽고 완벽하지는 않지만 예인줄이 고정되고, 예인이 시작 됐다.
빠르다.
부드럽다.
가끔 배 전체가 바다를 치지만.
편하다.
이제 느껴지는 배고픔에 다들 바나나를 하나씩 까먹는다.
그런데 한시간 정도면 올 줄 알았던 육지는 가도가도 가까워지기만 할 뿐 도착되지 않는다.
얼마나 멀었던 것일까?
예인되는 속도는 우리 자력으로 진행하던 속도에 몇배는 되는 10노트에서 15노트 사이 정도인 것으로 느껴졌다.
나중에 물어보니 6.5노트 정도로 예인되어 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스톰쎄일과 엔진을 사용해서 조류와 파도를 넘으면서 우리가 항해하던 속도는 대체 몇 노트였을까?
이렇게 오고 오고 해서 약 세시간을 지나서야 영일만 입구 방파제 근처에 오고, 경비선이 어망에 걸려서 영일만 내에서 약간 지체하고 항구 내에 들어오니 밤 10가 한참 넘었다.
이윽고 두 배가 분리되고 우리 배에 엔진을 걸고 경비정이 자기 옆에 붙혀서 세우라고 하여 몇번의 노력 끝에 배를 경비정의 후미부분에 옆으로 세우고 밧줄로 묶었다.
휴우~
경비정에 올라가니 우리는 작은 식당으로 들어가고, 함장이 커피와 라면을 끓여내오라고 지시한다.
따뜻한 커피를 한잔 씩 마시고 조금 후 김치는 맛없었지만 김치가 들어간 라면을 한그릇씩 먹었다.
한사람은 라면을 반도 먹지 못했고.
시간은 밤 11시가 넘었다.
그전날 오후 2시에 경기를 시작한 지 약 33시간만이고, 회항을 결정하고 돌아오기 시작한 지는 11시간 정도 되었다.
잠시 후 간단하게 사고 경위를 정리하여 설명하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이때 얘기 들은 바로는 워낙 구조요청을 한 배는 결국 울릉도로 안착했고, 같은 배인지는 몰라도 한배는 마스트(돛대)가 부러지는 수난을 당했다고 한다.
경위보고가 끝나고, 경비정이 새벽에 다시 출항한다고 해서 우리는 배를 같은 항구내의 항만청 앞에 폐타이어들이 묶여있는 빈 곳에 배를 대고 묶었다.
<우리를 보호하고 파도 사이에서 타격을 받으며 고생한 배와 선원들>
이어 근처의 모텔에 들어 몸을 ?고, 다들 술을 마시러 갔다.
술을 마시고 또 마시며 우리의 상황에 대해 반성도 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도 얘기하고.
이때까지도 우리가 <조난>한 것이다, 또 아니다 라는 반론까지 얘기가 되고.
나는 이차까지 갔다가는 피곤해서 혼자 먼저 돌아와서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배에 가서 배를 확인하고 내 물건을 정리한 후에 배를 청소하고 젖은 하네스, 구명조끼, 옷 등을 선상으로 오려펴서 말리고 빌지의 물을 퍼내고는 선주와 인사하고 집으로 무사히 귀환했다.
돌아오는 기차에서 생각하니 이번 경험에서 느낀 점이 하나 둘이 아니다.
첫째, 내가 이런 장거리 항해를 위해 정신적으로 또 기술적으로 충분히 준비되지 못한 채로 경기를 시작했다는 점이다.
항구 근처에서 수차례 항해에 대한 경험과 자격증이 있다는 정도지만 실제로 위급한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배 항해에 기여하지 못했다는 점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둘째, 개인적인 장비로는 방수가 잘 되는 항해복 위아래와 신발이 장거리 항해에는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이번 경우 바지가 제대로 방수가 않되니 파도를 한번 뒤집어 쓰니 속옷까지 다 젖어 바람이 쎈 상태에서는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하였다.
셋째, 근해가 아닌 곳을 항해하기 위해서는 배 자체는 물론이거니와 기본 안전장비와 통신장비들이 철저히 사용가능한 상테인지를 확인하고 그들의 고장 가능성에 대비해서 여유가 있는 최소한의 중복적인 보유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넷째, 이번에는 운이 좋게 잘 구조되어 문제없이 끝났지만, 다음부터는 위험이 내재한 일에는 철저한 준비로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사전 노력을 태만히 해서는 않되겠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경험이 너무 고맙다.
이번 일로 하여 나는 항해가 즐겁고 쉬운 것만이 아니고, 오히려 순간에 나를 포함한 여러 사람을 삶과 죽음의 갈랫길로 내몰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이번 겨울에 보르네오에서 한국까지의 개인이나 소수 항해를 계획하였던 만큼 그 계획이 지금 보면 얼마나 무모했던가를 다시 깨닫게 해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아무 불평없이 도움이 많이 못된 나를 포용해주면서 특히 심신으로 고생했던 선주와 앞서서 잠도 못자며 항해를 주도했던 다른 두 선원들에게 뒤늦게나마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고맙습니다.>
"No matter how important a man at sea may consider himself, unless he is fundamentally worthy the sea will someday find him out." - Felix Riesenberg
(바다에서 배를 타면서 자신이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할 지 몰라도, 그 사람이 근본적으로 가치가 없다면 바다는 언젠가 알아내게 된다. - 펠릭스 리젠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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