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식총(虎食塚)
이글은 이용직시인의 윗대 7대조부이며 정조임금 때 승정원 도승지를 지낸 이종호(李鐘鎬)란
분이 호환(호랑이에게 죽음을 당함을 일컷는 말)을 당하게 된 사연을 기록한 글입니다....
호랑이 보다도 더 무서운게 탐관오리의 수탈이라고 했다는데 그 당시 민초들이 겪었을 고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물론 이종호란 분은 관직에 있다 산골로 숨어든 경우이지만
비교적 호환에 대해 사실적으로 기록한 글이라서 옮겨 봅니다....
〔1〕
당골에서 태백산 천제단으로 오르는 길목에 ‘호식총 안내’라고 쓰인 간판을 보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호식총이라니! 온몸에 찌르르한 전기가 흘렀다. 며칠 전 우연히 펼쳐 든 족보에서 호식총에 대한 기록을 발견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39世 諱 鐘鎬 嘉慶元年 虎患 卒 太白山 堂谷 虎食塚 設壇
내용을 요약하자면, 종(鐘)자 호(鎬)자를 함자로 쓰시는 7대조 할아버지께서 가경(嘉慶, 청나라 황제의 연호) 원년, 즉 조선조 정조 임금 치세에 호환(虎患, 호랑이에게 당하는 화)을 당하여 태백산 당골에 호식총으로 매장했다는 것이다.
그 할아버지는 승정원 도승지를 지내신 자헌대부공(資憲大夫公)이다. 도승지라면 정삼품 이상 관직인 당상관으로, 현재의 공무원 직급으로 치자면 대통령 비서실장 격이다.
높은 관직에 있던 분이 무슨 이유로 태백산 당골에서 호환을 당했을까 하는 주체하지 못할 의문이 생겼다. 사실 이번 태백산 등산도 민속학을 전공하는 학생으로서의 호기심도 한몫을 했지만, 무엇보다 족보에 기록된 내 할아버지의 호식총에 관한 실체를 자손 된 도리로 직접 확인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더 컸다. 그런데 그 의문의 호식총이 지금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호식총이 과연 할아버지가 호환을 당했다는 그 호식총인가? 돌무덤 앞에 세워진 안내판에는 "오래전 옛날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사람이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고, 그 유체를 수습하여 호식총을 만들었다"라고만 기록되어 있으니 궁금증이 더했다.
호식총의 규모는 크지 않았다. 가로 세로가 2미터에 미치지 못하고 어른의 허리 높이로 돌을 쌓았는데 위로 갈수록 뾰족한 게 마치 피라미드를 쌓아놓은 모습과 닮았다. 바닥에 깐 반반한 판석에 푸른 물이끼가 낀 것으로 봐서 매우 오래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고, 위로 쌓은 돌들이 무너져내려 원형이 흐트러져 있었다. 안내판이 없었다면 밭에서 골라 버린 돌무덤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그런 모양이었다.
나는 산행을 포기하고 바로 당골로 내려가 여러 사람을 방문하여 이 호식총에 대한 내력을 탐문하기 시작했다. 떠도는 소문으로 보태지고 더러는 과장되게 꾸며진 상태로 그곳 사람들에게 구전되고 있었다. 그들의 흐릿한 기억 속에서 나온 얘기들을 퍼즐 조각 맞추듯 이어보니 호식총이 품은 사연이 서서히 머릿속에 그려졌다. 매우 오랜 일이고 또 극히 은밀하게 이루어진 사건이어서 정확한 개요를 알긴 어려웠지만, 그런대로 당골 호식총에 얽힌 내용을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긴 세월 속에 풍화된 채 잊혀진 호식총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역사에서도 지워진 이 호식총의 절절한 사연들을 이야기로 재구성하여 그들의 한과 역사를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되짚어보게 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이는 바로 내 할아버지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2〕
정조 연간에 이석필(종호)이란 도승지가 있었다. 그는 매우 충실한 사람이어서 임금의 각별한 신임을 받았고 동료들과도 교분이 두터웠다. 한 천주교인과 교분을 맺은 인연으로 그는 자신도 모르게 천주교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천주교를 박해하는 국가적 변란이 일어나기 전까진 그 자신이 이 변란에 휘말리게 될지는 꿈에도 몰랐다.
어느 날 임금이 도승지를 찾았다. 임금은 어전회의에서 논의된 의제를 정리하여 팔도의 관헌과 일반 백성에게 널리 알리도록 지시했다. 어전회의를 지켜본 도승지 이석필 영감의 등줄기에서 한 줄기 전율이 찌릿 하고 흘렀다.
“짐이 듣자하니 근자에 천주학쟁이들의 패륜이 자심하다 들었는데 형판은 그동안의 경과에 대해서 말해보시오.”
“신 형조판서 아뢰옵니다. 저번에 동대문에서 잡았던 천주학쟁이들을 거열형으로 다스린 후 잠시 뜸하는 말미가 있었사온데 지난달 초순에 이르러 불국(프랑스)에 있는 천주학의 우두머리가 한양으로 숨어들면서 그를 따르는 자들이 부쩍 늘었다 하옵니다.”
“천주학쟁이를 발본색원하여 선량한 백성들을 호리지 못하게 하라고 그토록 일렀건만 아직도 그들의 발호가 여전하다는 말이오?”
“송구하옵니다.”
“형판과 의금부 당상은 들으시오. 천주학쟁이는 임금을 부정하고 부조(父祖)의 봉제사(奉祭祀)를 외면하는 천하에 부도덕한 무리라는 것은 조야(朝野)가 널리 알고 있는 사실이오. 서양의 문물이 비록 실용에는 쓸모가 있다 하나, 임금을 속이고 부모를 부정하는 천주학을 신봉하는 그런 백성을 짐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소. 경들은 어떤 조처가 적절한지 말해보시오.”
“신 호조판서 아뢰옵니다. 백성들이란 본시 양떼 같아서 법도가 엄하면 순종하고 풀어두면 방종하게 되는 법입니다. 하여 다섯 호구를 하나로 묶어서 서로를 감시토록 하는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을 시행하신다면 천주학쟁이들이 발붙일 틈이 없을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호판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말씀이오. 백성은 물이요, 물이란 담는 그릇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나는 법이오. 좋은 정치를 하면 좋은 모양으로 보답하고 나쁜 정치를 하면 나쁜 행동을 보이는 게 백성이오. 또 물이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엎을 수도 있소. 너른 바다에 큰 배를 띄워봤자 민심을 얻지 못한다면 일엽편주에 불과할 뿐이오.
사사로운 정으로야 천주학쟁이도 짐의 백성이요, 피를 나눈 부모형제이건만 서양 오랑캐들의 배군기부모(排君棄父母)하는 패륜에 빠진 백성들을 선도해야 할 책무 또한 짐에게 있소. 작은 것을 희생해서 큰 것을 온전히 하고자 함이 짐의 생각이오. 경들은 즉시로 죄인들을 색출하여 엄벌에 처함으로써 다시는 이들이 나라를 어지럽히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어명이 떨어지자 형조에서의 엄중한 감찰과 의금부의 죄인 색출이 시작되었다. 그 결과로 나라 안은 한동안 조용했다. 그러나 겉으로는 평온한 것처럼 보였지만 천주학쟁이들에게는 실로 큰 변화가 닥치고 있었다. 중국에 파견되었던 불란서의 우두머리 신부가 조선으로 잠입해 들어온 것이다. 믿는 사람들에게는 천주가 재림한 이상으로 반가운 일이지만, 여차해서 발각되는 날에는 살아남지 못하는 형벌을 받게 될 터라 믿는 자들의 하루하루는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어느 날, 드디어 경천동지할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천주를 탄압하는 조선의 정책을 교황청에다 발고하는 사건이 터진 것이다. 황사영이 일으킨 백서사건, 소위 신유사옥이 일어난 것이다.
황사영의 백서는 두 자가 넘는 천 조각에 깨알 같은 잔글씨로 모아 쓴 일만 삼천 자의 괴문서였다. 거기에는 첫째, 포교를 하고자 하는 자금을 지원할 것, 둘째, 서양신부를 조선에 파견할 것, 셋째, 조선을 청나라에 복속시키고 감독케 할 것, 넷째, 군대를 파견해서 선교사의 포교활동을 도와줄 것 등이 적혀 있는, 참으로 대단한 흉서(兇書)가 아닐 수 없었다.
긴급히 열린 어전회의에서 문제의 백서를 읽는 도승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대전에는 바늘 떨어지는 소리조차 들릴 듯했고 시립한 대신들은 몸 둘 바를 몰랐다. 임금의 용안에 짙은 먹구름이 번졌다. 백서는 황당했다. 나라에서 금하는 천주학을 믿는다는 것도 강상(綱常)을 흩트리는 대역죄인이거늘 하물며 청나라의 힘을 빌려서 조선을 복속시키라니! 그도 모자라서 대군을 동원해 전쟁을 일으키라고 부추기고 있다니, 한 나라의 신민으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대역죄인 것이다.
“경들은 들으시오! 어찌하다 이와 같은 대역 죄인이 생겨났소? 그자들에게는 임금도 없고 부모도 없단 말이오. 어찌하여 남의 나라로 하여금 제 나라를 복속시켜달라는 참언(讖言)을 할 수가 있단 말이오! 이러고도 이 나라 백성이라 할 수 있겠소. 이러고도 이 조선의 신민이라 할 수 있느냐 그 말이오. 임금을 속이고 부모를 내다버리는 천하에 망나니 같은, 같은 하늘을 쓰고 살 수 없는 대역죄인이 아니오!”
임금의 분노에 영의정 이하 백관들이 일제히 대전 마루에 꿇어앉았다.
“신 영의정 삼가 아뢰옵니다. 오늘날 이와 같은 사태는 모두가 신의 불찰이옵니다. 신이 용렬하여 백성을 위무(慰撫)하지 못했고 저잣거리의 인심을 수습치 못한 죄가 태산같이 크옵니다. 신을 벌하여주옵소서!”
“신의 불찰이옵니다. 신등을 벌하여 주시옵소서!”
임금이 기진하여 용상에 옥체를 기댔다. 넓은 편전에 소름이 끼치도록 한기가 돌았다.
“경들은 들으시오! 이 참담한 흉서를 지은 황사영을 즉시 잡아들여 엄히 처단하시오. 이후로 발각되는 천주학쟁이는 본인은 물론이고 당사자가 아비면 일족을 주살하고, 자식이면 그 아비와 어미를 연좌시켜 죄를 줄 것이며, 이후로 삼대까지 그의 자식은 환로(宦路)에 오르지 못하도록 엄중하게 조처하시오!”
그리하여 의금부에서는 다시 천주학쟁이들을 잡아들이고 국문하기 시작했다. 예배를 보던 형제자매들이 추포(追捕)되어 사지가 찢어지는 고문이 매일같이 계속되었다.
도승지 이석필은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이었다. 고문 현장을 지켜볼 때는 차라리 자신이 형틀에 매이고 싶은 마음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죄를 추국하는 당상 앞에 나아가서 “내가 저들과 한패거리요. 그러니 나도 잡아가시오.” 하고 소리라도 치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은 임금을 모시는 도승지가 아니던가. 성상을 지근거리에서 모시는 신하로서, 어의를 누구보다 잘 헤아려야 하는 처지에 있는 자로서, 임금이 그토록 기휘(忌諱, 꺼리고 싫어함)하는 천주학을 믿는다고 스스로 발설하기란 죽기보다 더한 형벌이었다.
그의 머릿속에 만감이 교차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이처럼 가시방석에 앉은 채로 더 이상 임금을 모실 수는 없다. 한가지로 기도하던 형제자매들이 잡혀와 처형되고, 남아 있는 일가권속들의 곡성이 진동하니 차마 얼굴을 들고 그들을 쳐다볼 수가 없다. 내일은 임금께 나아가 죄를 자복해야겠다. 도승지라는 벼슬을 앞세우고 임금의 용상 뒤에 숨어서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리 되면 저 어린 남매와 사랑하는 아내는 어찌한단 말인가. 내 한 몸이야 죗값을 받으면 그뿐이지만, 대를 이어 출사한 가문의 명예는 또 무슨 수로 지킬 것인가. 영의정을 지내신 할아버지는 어찌하고 성균관 대제학을 역임하신 아비의 명성은 또 어찌하란 말인가. 그도 저도 아니라면 자진을 할까? 사고를 가장한 자진을 한다면 일신은 죽더라도 조상에 대한 명예는 지키지 않겠는가.
그러나 과연 자진하는 일만이 능사일까? 이때만 지나면 다시 모든 과거는 없었던 것처럼 태평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그때를 기다리자. 어디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어 화전민이라도 되자. 텃밭을 가꾸어 푸성귀를 거두고, 녹음이 풍성하거든 산에 들어 나물을 뜯자. 그리고 가을이 깊거든 머루와 다래를 따서 연명을 하자. 선비의 자존심과 지체 높은 관리로서의 책임 따위가 다 무슨 소용인가? 오로지 목숨이 문제다. 죄 없는 처와 어린 자식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어서야 될 일인가?
이석필의 마음속에 온갖 생각이 떠돌았다. 나에게는 천주님이 오시는 훗날을 기약해야 할 크나큰 명제가 있지 않은가. 시대가 불리해서 박해를 당하고 있지만 곧 천주님의 세상이 올 것이다. 신분의 귀천도 없고 지체의 높낮이도 없는, 인간들 모두가 한가지로 존중받는 천주님의 세상이 미구에 올 것이다.
그런 기대에도 불구하고 당장 미친바람이 몰아치는 천주교인의 검거 선풍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권력과 맞서는 일은 사마귀 한 마리가 수레바퀴를 막아서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명색이 조정의 대신이고 중신인데 어찌하다가 나라에서 금지하는 천주학을 숭배했더란 말인가 하는 자책감도 들었다. 대명천지 밝은 날에는 천주를 믿는 신도를 핍박하고 어둠을 틈탄 야간에는 천주를 신봉하는 이 표리부동한 행동을 언제까지 할 것인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천주학쟁이의 사냥에 걸려 목숨을 잃는다면 순교자가 되는 거룩한 죽음일 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처신을 제대로 못한 개죽음일 수도 있지 않은가 하는 회의도 들었다.
오랜 번민 끝에 언젠가는 천주학을 인정하는 날이 올 것이니 그때를 기다리는 것이 옳다는 결론으로 마음을 굳혔다. 때를 기다리자! 그것이 이석필이 내린 마지막 결론이었다. 그는 마음을 굳히고 아내를 불러 말했다.
“내가 하는 말 잘 들으시오. 임자도 알다시피 나라에서 금지한 천주학 때문에 하루에도 수많은 형제자매들이 처형되고 있소. 생각 같아서는 나도 자복하여 벌을 받고 싶지만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소. 누군가는 살아남아서 뒷날을 기약해야 하지 않겠소. 이참에 우리 어디로 떠납시다. 아는 사람이 없는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 훗날을 기약합시다. 천주님 세상이 도래하면 그때 다시 세상에 나와서 천주님의 은덕을 포교하면서 인간답게 삽시다. 남아로 태어나서 나라에 충성하고, 인격을 도야하여 민생을 깨우쳐야 할 사대부로서, 조정의 중책을 맡은 관료로서 눈앞의 현실을 도피한다 함은 도리가 아니지만 달리 방법이 없소. 그러니 부인은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나를 따르도록 하시오.”
물러설 수 없는 절박한 사정임을 절감한 도승지의 아내는 남편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야반도주하는 행장이라 두서가 없었다. 혼사 예물로 받은 금가락지 한 쌍과 옷장 속에 넣어둔 엽전 스무 냥이 전 재산이었다. 청백리 집안에서 태어난 남편은 근검절약하는 가풍이 몸에 익어서 ‘생쥐 볼가심할 곡식조차 없다.'는 옛말이 틀린 게 없다 할 정도로 가정 살림은 빈한했다. 한 살림 밑천을 톡톡히 장만한다는 이조정랑을 지내면서도 녹슨 엽전 한 닢 들고 오는 법이 없이 살았으니 묻어둔 재산이 있을 리가 없었다.
“아버님 어머님, 불효자를 용서하십시오. 무릇 대장부는 입신출세하여 나라에 충성하고 아비의 이름을 천하에 떨치게 하는 일이 효의 마지막이라 가르치신 아버님의 말씀을 어찌 소자가 귀 넘어 듣겠습니까. 그러나 소자는 너무나 엄숙한 지금 이 순간을 감당키 어렵습니다. 백방으로 생각하고 또 궁구했으나 이 길이 아니면 달리 도리가 없었습니다. 만인이 인간답게 살고 평등하게 대우받는 천주님의 세상이 오면 그때 아버님을 모시겠습니다. 부디 그때까지 옥체 강녕하시고 만수무강하십시오."
때로는 엄격했고 또 자상했던 아버지를 생각하니 서러움이 북받쳤다. 대과에 입격한 아들을 껴안고 “우리 집안에 대제학이 났네, 우리 집안에 영의정 부사가 났네.” 하며 좋아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이석필 내외는 대충 꾸린 보따리를 이고 지고 아이들 손을 잡은 채 서둘러 길을 나섰다. 찌든 바지저고리 차림에 자투리 수건을 동이고 나서니 누가 봐도 상놈 차림이었다. 소작 떨어진 머슴이 정처 없이 솔가(率家, 집안 식구를 거느리고 떠남)하는 짠한 형국이었다.
〔3〕
마포나루를 벗어나면서부터 발이 부르트고 신발이 벗겨졌다. 아이는 배고프다 울고, 늦가을 찬바람은 허름한 옷깃을 파고들었다. 길을 나선 지 보름이 지났다. 등에 업힌 아이는 지쳐서 잠들었고, 손목을 잡힌 아이는 잠결에 끌려왔다. 아내는 멍한 상태로 걸음을 옮기고 아비는 의무감으로 지친 다리를 끌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어둠이 내려앉은 먼 하늘 끝에서 불빛이 반짝였다. 저리로 가자! 죽인다 해도 더는 못 걷겠다. 마지막 안간힘을 쓰듯 불빛을 향해 서둘러 걸음을 재촉했다.
“길 가는 나그네인데 하룻밤을 유해 갈 수는 없겠는지요?”
“누가 왔소? 이 밤중에 누구시오?”
“날이 저물었습니다. 하룻밤을 재워주실 수는 없는지요?”
“좌우간 들어오시오. 누추하지만 나그네를 박대할 수 있겠소. 얼른 드시오. 밤바람이 차갑소.”
따끈따끈한 방바닥에는 갈대로 엮은 돗자리가 깔려 있고, 윗목에는 저녁을 물린 밥상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늙은이 혼자 사는 집이라 누추하오. 저녁이나 했는지 모르겠소.”
“죄송하오나 삶은 감자라도 있으면 아이들을 먹였으면 합니다만…….”
목구멍에 걸린 말이 힘겹게 나왔다.
“잠시만 앉아 계시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잠깐 사이 곯아떨어진 나그네를 노인이 살며시 흔들어 깨운다. 눈을 떠보니 그 앞에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감자가 섞인 보리밥이 고봉으로 담겨 있었다. 아이들의 눈이 왕방울만 해지더니 순식간에 밥상으로 달려들었다. 아이들이 볼이 미어지도록 밥을 퍼먹는 사이 그도 함께 앉아 금세 밥 한 그릇을 비우고 나니 이제야 정신이 좀 드는 것 같다.
“우리 할망구가 먼저 저승으로 간 후로 바깥세상과는 등을 지고살고 있다오. 나뭇잎이 피면 봄인가 하고, 단풍이 들면 가을인가, 눈이 오면 또 한 해가 가는구나 하며 짐작으로 살지요. 그런데 손님은 어디서 오시는 뉘시기에 이 야밤에 길을 나섰소?”
“사정이 좀 있어서 그리 되었습니다.”
“태백산에 박힌 늙은이가 바깥일은 알아서 뭘 하겠소. 걱정들 마시고 푹 주무시지요.”
태백산이라니, 여기가 태백산이란 말인가. 소백산 깊은 산골을 목표로 했는데 태백산이라니! 한편으로는 반갑고 한편으로는 정말로 산골 사람이 되는가 싶어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모처럼 배부른 포만감으로, 보름도 넘게 다리품을 팔고 있는 고단함으로 이내 꿀맛 같은 단잠에 빠졌다.
나뭇잎 사이로 부챗살 같은 아침 햇살이 비쳐들었다. 오늘은 또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
“가시더라도 아침이나 들고 가시오. 사람의 도리가 그런 게 아니지요.”
사실 이대로 나선다 해도 딱히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정해놓은 곳도 없어 보이는데 더 묵어가시면 안 되겠소?
내 밥값 달라는 소리는 하지 않으리다."
아침상을 물리고 난 뒤 노인이 진지하게 말했다.
“오늘은 내가 농사짓는 밭에 가서 구경이나 합시다. 나도 한때는 논밭 간에 수십 두락을 짓는 중농이었다오. 십여 년 전에 호열자(虎列刺, 콜레라)가 휩쓸 때 아들 두 놈을 한꺼번에 잃고 여기로 들어왔다오. 산골도 정을 붙이면 그런대로 살 만하다오.”
노인의 말은 자상했다.
“내가 살면 얼마를 더 살겠소. 손님이 오래 묵어간다면야 나로서는 더없이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말이오.”
산전(山田)은 제법 펀펀한 곳에 있었다. 남향받이 다락 밭에는 때를 놓친 콩이며 팥이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고, 밭 귀퉁이 감나무에는 홍시가 지천으로 달려 있었다.
“콩 농사는 꼬투리가 거지반 익었다 싶으면 꺾어야 하는데 하는 일 없이 뭉그적거리다가 이 꼴이 난 것이오. 거기 서 있지만 말고 이 콩 좀 주우시오."
이랑을 타고 앉아서 낟콩을 주웠다. 한 알 한 알 줍다보니 이내 주먹에 가득했다.
“인사가 늦었지만 통성명이나 합시다. 난 김수평이라 하오. 사람들이 수평 어른이라 부른다오. 칠십을 넘겼으니 살 만치 산 사람이오.”
“이돌석이라 합니다. 마흔을 갓 넘겼습니다.”
“내 보기로 예사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무슨 말 못할 사연이라도 있는 게요?"
“저는 양평 최 부잣집에서 소작농을 부치는 작인이었지요. 못된 짓을 하는 주인댁 마름을 때려주고 집을 나왔답니다."
“사정이 딱하게 됐구먼. 그러면 이제부터는 어찌할 셈이오?”
“그저 발끝 닿는 대로 가다가 양지 바른 곳에 초막이라고 얽고 살 작정입니다.”
“여기서 나하고 같이 삽시다. 혼자 사는 것도 힘들어 추수가 끝나면 아랫동네로 내려갈까 했는데 잘됐소. 산전이 제법 있어서 밥은 굶지 않을 거요. 태백산 어디를 가도 이만한 곳이 없을 게요. 나도 사람이 그립던 판에 잘된 일이고.”
노인의 말을 듣고보니 마음이 기울었다. 이제 조금 더 있으면 눈 내리는 겨울인데 집도 절도 없는 첩첩산중에 어디 가서 겨울을 난단 말인가. 어른들이야 그렇다고 쳐도 어린 것들이 모진 겨울을 나기란 쉽지 않는 일이다.
“고마운 말씀이지만, 초면에 이리 신세를 져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단풍잎이 하나 둘 보일 때 이 산골에 들어왔는데 노인이 지은 농사를 거두고 나니 이내 겨울이 왔다. 깊은 산골이라서 겨울도 빨리 오는 듯했다.
산이 깊으니 해는 짧고 밤은 깊었다.
눈이 억수로 퍼붓던 어느 날이었다. 저녁나절부터 하늘이 꾸물대더니 바가지로 푸는 것처럼 폭설이 내렸다. 앞뒷산 소나무에서 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밤새 이어졌다. 한밤중이나 되었을까, 마당에 있던 백구가 자지러지게 짖어댔다.
목멘 송아지처럼 덩치가 큰 백구가 짖으면 온 산에 메아리가 울리는데 오늘은 무엇에 쫓기기라도 하는지 “깨갱” 하는 외마디 소리를 내고는 그만이다. 호롱불을 켜들고 문을 나서니 노인의 방에도 불이 켜졌다.
“이씨! 얼른 들어가서 불 끄고 주무시게.”
“백구가 짖어서 나왔더니 아무것도 없네요.”
“잔소리 말고 얼른 들어가라는데도!”
노인의 태도가 보통 때와는 달리 매우 단호했다.
“간밤에 산신령님이 왔다 갔어.”
“무슨 말씀이신지…….”
“답답하기는. 태백산 산신령님이 내려와서 백구를 물고 갔단 말이오.”
점점 더 모를 소리다.
“이씨, 내 말 잘 들으시오. 산중에 살자면 산신령님을 알아야 하는 법이오. 어젯밤에 산신령님이 내려와서 백구를 물어갔다 그 말이오. 그럴 때 사람은 그저 죽은 듯이 처박혀 있어야 한단 말이오.”
“산신령님이 백구를 물어가다니, 도대체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산중 사람들은 호랑이를 산신령님이라 불러요. 태백산에서는 흔한 일이오. 사람을 물어가지 않았으니 다행이오."
“어르신께서도 호랑이가 사람을 물어가는 것을 보셨나요?"
“암튼간에, 십여 년 전에 소도골 김 영감이 호환을 당했어. 그렇지만 아무나 호환을 당하는 게 아니니 걱정은 마시오.”
“저는 무슨 말씀이신지 잘 이해가 안 되네요.”
“그럴 거요. 이제 더 살다보면 차차 내가 한 말을 이해하게 될 거요.”
〔4〕
세월은 빨랐다. 오늘 아침에는 이봄 들어 처음으로 파장다리에 앉은 흰나비를 보았다. 흰나비를 보면 상사(喪事)를 당한다던데, 한양에 계신 노부모님께 무슨 일이라도 생기지 않았는지 걱정이다. 농사는 재미있었다. 낟콩을 주웠던 비탈 밭에도 보리가 익었고, 집 앞 텃밭에는 일용할 채소가 소담하게 자라고 있다.
노인을 따라 산에 들다보니 먹는 나물과 먹지 못하는 나물을 구별하게 되었고, 봄에는 꿩알도 주웠다. 생전 처음으로 산나물을 뜯고 열매를 따는 일에 몸은 고달팠지만 마음만은 한없이 편했다. 시원한 여름에는 맑은 계곡에서 멱을 감고, 아이들은 돌 틈을 비집어 가재를 잡아냈다. 은하수가 정수리에 걸리는 여름철에는 모깃불에 둘러앉아 노인의 옛날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쏠쏠했다.
“돌석이 내외분, 이 방으로 좀 건너오시게.”
큰 마을에 나갔던 노인이 도승지를 불렀다. 순간 알지 못할 불안이 덮쳐왔다.
“오늘 장터에 나갔다가 이상한 소문을 들었소. 지금 한양에선 천주학쟁이를 잡아들이라는 어명이 내려서 난리가 났다지 않소. 그리고 지난해는 임금을 모시는 높은 벼슬아치가 천주학쟁이가 돼서 종적을 감췄는데, 이도 함께 잡아들이라는 어명이 내렸다는 게요.”
노인의 말에 이석필의 심장이 심하게 두방망이질을 쳤다.
“그렇습니까? ……천주학쟁이가 뭣이지요? ……그런 것은 모두가 등 따시고 배부른 양반님네들이 하는 짓이지요…….”
그 일이 기어코 터졌구나! 여기까지 파발이 닿은 것을 보니 한양이 발칵 뒤집어진 모양이었다. 이곳도 안전하지 않구나. 여기보다 훨씬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야겠다. 날이 밝는 대로 노인에게 물어보자. 솔직하게 털어놓고 도움을 받자…….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밖을 나가보니 밤사이 푹푹 빠지는 눈이 왔다. 길을 떠나기로 작심을 했지만 날이 밝고 보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더구나 눈까지 오지 않았는가.
“어르신, 죄송합니다. 인간 도리를 하지 못한 이놈을 용서하십시오. 저는 양평 사는 이돌석이 아니라 조정에서 임금님을 모시는 도승지 이석필이옵니다. 어찌하다 여기까지 와서 어르신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야반도주라도 할까 하다가 사실대로 말씀드리고 용서를 빌자고 용기를 냈습니다.”
“사실 진작부터 알고 있었소. 그러나 본인이 말하기 전에야 어찌 안다 하겠소. 더구나 식솔을 거느리고 여기까지 찾아들 때는 얼마나 절박했을까 하는 마음이 더 측은했던 게요. 지난번 장터에서 도승지를 찾는 벽보를 내 눈으로 보고 왔소. 그렇지만 내 입으로 말할 수가 없어서 이리저리 돌려서 말을 했던 게요.”
“제가 죽일 놈입니다. 관직에 있는 자가 임금을 버리고 도주한 죄는 마땅히 능지처참을 받아야 할 일입니다.”
“그런 말씀 마시오.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무슨 짓인들 못하겠소. 산골 노인네야 천주학이 무엇인지, 믿음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분명 좋은 시절이 온다는 약조 같은 게 있고 보면 나라도 그리 했을 것이오. 그러니 너무 자책일랑 하지 마시오.”
“그저 어르신의 처분만 바랄 뿐입니다.”
“자, 그럴 게 아니라 이렇게 하면 어떻겠소. 어명이 내려졌으면 나졸들이 이곳까지 덮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겠소. 그러니 거처를 옮깁시다. 고개 하나를 넘으면 태백산에서 제일 골이 깊은 당골이라는 곳이 나오지요. 그쪽 사정은 내가 잘 알고 있으니 눈이 녹거든 함께 갑시다. 내가 가서 움막이라도 쳐주고 올 테니 마음을 편하게 가지시오.”
사람이 사람 구실을 하자면 배워야 하고 견문이 넓어야 한다. 그러나 적어도 이 노인에게 그 말은 틀린 말이었다. 화전을 일구며 낫 놓고 기역자도 깨우치지 못했지만 사서오경에 달통한 여느 선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누가 이 노인을 무식하다 할 것인가. 누가 이 노인을 우직하다 할 것인가. 모든 것을 털어놓고 나니 가슴속에 얹힌 천근같은 돌덩이를 내려놓은 것처럼 마음이 가벼웠다. 새삼스레 노인이 태산처럼 높아 보였다. 이석필은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노인 앞에 큰절을 올렸다.
산길은 멀고 험했다. 아침나절에 길을 나선 일행이 경상도와 강원도를 잇는 태백산 당골 마루에 올라섰을 때는 정오가 조금 지나 있었다. 잔설이 자부룩하게 산길을 덮고 있는데 양지 자락에는 생강나무가 노란 꽃을 내밀고 있었다. 바짝 마른 싸리 꼬챙이가 눈바람에 얼어붙은 얼굴을 때릴 때면 눈물이 찔끔했다.
주머니에 깊이 간직하고 있는 묵주를 꺼내서 어루만지니 온몸 가득히 평화로운 기운이 전해져온다. 머릿속은 온통 천주님 생각으로 꽉 차 있었지만 몸은 태백산 속 당골을 향해 가고 있었다. 앞으로는 이 길이 끝나는 곳에서 살아야 한다. 눈 쌓인 고개를 넘어서니 화전민이 살았음직한 묵밭이 나타났다.
“도승지 영감, 여기에 짐을 풉시다. 내 잠시 둘러보니 양지 바른 땅에 채마 정도는 갈아먹어도 되겠고, 물이 앞에 있으니 식수는 걱정 없고, 온 산이 화목 천지이니 땔나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테니 이만한 곳도 없을 게요. 동네와 떨어져서 다소간에 적적하지만, 어차피 사람과 떨어져 있어야 할 판인데 오히려 잘됐지 않소."
모두 팔을 걷어붙이고 도승지네 일가족이 살아갈 집을 지었다. 집이라기보다는 귀틀집을 닮은 움막이었다. 앞뒷산에 지천으로 널린 마른 나무둥치를 잘라서 벽채를 올리고 빈틈에는 찰흙을 개어 발랐다. 잘생긴 통나무를 다듬어서 대들보를 올리고 서까래를 걸었다. 쓰고 남은 통나무로는 얇은 판자를 만들어서 너와지붕을 덮었다.
다음은 구들을 놓을 차례다. 노인이 쓸 만한 판석을 골라왔다. 구들장을 놓는 일은 숙련자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이지만 노인은 단 한 번으로 끝을 냈다. 아이들이 주워온 마른 불쏘시개로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드디어 굴뚝으로 연기가 나왔다. 모락모락 피던 연기가 갑자기 확 쏟아져나왔다. 집 짓는 일은 열흘 만에 끝났고, 노인은 이것저것을 더 챙겨주느라 며칠을 더 묵었다. 그의 마음 씀씀이는 마치 딸아이 시집보내는 부모와 같았다.
노인이 돌아간 날 저녁, 도승지 내외가 아이들과 한자리에 모여 앉았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가족끼리 모여 앉은 게 실로 얼마 만인가. 너와를 올린 초라한 움막이지만, 온전한 내 집에 온 식구가 오롯이 모여 앉기를 얼마나 원했던가. 도승지는 아내의 손을 잡고 기도를 드렸다. 여기서 사는 그날까지 아무 탈 없이 살게 해달라고 천주님께 기도했다. 두 아이들 건강하게 자라고 천주님의 세상이 오는 그날까지 무탈하게 살도록 해달라고 기도했다. 비록 두어 평도 안 되는 단칸방이지만 그 어떤 때보다 깊은 잠을 잤다. 이런 게 행복이고 이런 게 사람 사는 재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날이 밝았다. 우선 당장은 할 일이 없다. 아침을 먹고 나서 이 산 저 산을 돌아다녔다. 어디에 무엇이 있고 어느 골짜기에 무슨 나무가 있는지도 알아둘 필요가 있었다. 내친김에 태백산 정상까지 올랐다. 막힌 가슴이 툭 하고 터졌다. 임금님이 계시는 북쪽 하늘을 향해 깊은 절을 올렸다. 불충한 신하를 용서해주시라고 빌었다. 한 번 더 절을 했다. 연로하신 부모님께 올리는 절이다. 불효막심한 자식을 용서하시라고 빌었다. 그러나 북녘 하늘은 높았고 대답은 없었다.
산골의 겨울은 일찍 왔다. 간밤에 눈이 내렸다. 그런데 마당 한가운데 어른 손바닥만 한 짐승 발자국이 찍혀 있다. 큰 짐승 발자국이다. 고개 너머 노인장 집에서 백구가 물려간 형국과 똑같다. 이태 전에 겪었던 소름 끼치는 사건이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다. 태백산 신령님이 노하셨는가. 집을 지으면서 지신에게 빌고 산신에게도 빌었는데 정성이 부족했단 말인가. 고개 넘어 노인에게로 달려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앞으로 살면서 이와 같은 일이 또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고 보니 그도 할 짓이 아니었다.
마음을 다잡아먹고 그동안 게을리 했던 너럭바위에 올랐다. 당골로 거처를 옮기던 해에 보아두었던 너럭바위에 기도처를 마련하고 틈틈이 성모마리아 상을 그렸다. 딱딱한 바윗돌에 그림을 그리자면 빗물에도 끄떡없고 세월에도 씻겨내리지 않는 물감이 필요했다. 검은 물감은 소나무 관솔을 태운 그을음으로 만들고, 노란 물감은 황벽나무 속껍질을 벗겨서 만들었다. 황벽나무 속껍질을 벗겨 말렸다가 가루를 만들고 들기름을 풀어서 노랑 물감을 만들었다. 진득하게 찰진 물감은 비에도 씻기지 않고 눈에도 끄떡없는 천연 물감이다. 그동안 시나브로 그린 그림이 제법 윤곽이 드러나고 있었다.
‘오늘은 성모님 그림을 완성해야지.’
사다리를 놓고 너럭바위에 올랐다. 저번에 그리다 만 부분을 보충해서 그렸다. 가는 붓을 써서 정성으로 성모님의 얼굴 윤곽을 그렸다.
초승달같이 예쁜 눈썹도 그리고 인자하게 다문 입술도 그렸다. 특별히 황벽나무에서 뽑은 노랑 물감으로는 광배(光背)를 그렸다. 멀리서 한눈에 봐도 후광이 빛나도록 정성을 들였다. 한 번 칠한 그림 위에 열 번, 백 번 몽당붓이 될 때까지 덧칠을 했다. 성스러운 성모마리아 상을 우러르는 모든 사람들이 감복해서 무릎을 꿇도록 지성으로 그렸다. 천주님이 강림하시는 다음 세상까지 성스러운 모습이 온전하게 보전되도록 믿음과 정성으로 그렸다. 드디어 어린 예수를 가슴에 안고 계시는 마리아님의 거룩하고 성스러운 모습이 너럭바위 절벽에 현신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불쌍한 이 인간을 어여삐 여기사 천복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무지몽매한 인간이 저지르는 죄악을 사하여주시고 하늘의 영광이 이 땅에 울려퍼지기를 기원합니다. 이 죄인이 잠시나마 천주님을 배반하고 숨어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죄인의 오늘 일은 눈앞에 닥친 환란을 피하고자 함이 아니옵고, 천주님의 세상을 맞이하기 위하여 일시적으로 피난하고 있을 뿐이옵니다.
천주님이 세상에 오시는 날을 준비하기 위해서 숨어 지내고 있음이옵니다. 이 죄인의 소행을 가련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모든 죄를 사하여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죄인이 천주님께 지은 죄를 사하여주신다면 지금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다만 저 어린것들을 천주님의 넓은 품으로 건사하여주시고, 남의 아내가 되어 고생만 하는 어리석은 여인의 심령을 구하여주시옵기를 기도합니다. 이 몸이 죽어서라도 천주님의 은혜를 갚을 수만 있다면 그 죽음을 달게 받겠습니다. 아멘.”
〔5〕
심장을 옥죄는 긴장감이 흘렀다. 상감이 용상에 좌정해 계시고 백관이 도열해 있다. 그 가운데를 금관조복을 화려하게 차려입은 도승지 이석필 영감이 잰걸음으로 나와 용상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전하! 신 이석필 대령이옵니다.”
임금께서는 아무런 비답이 없다.
“전하! 대역죄인 전 도승지 이석필 대령이옵니다.”
시간이 그대로 흘렀다.
“전하! 이놈을 죽여주시옵소서. 하해 같은 상감의 은혜를 저버리고 천주학을 신봉한 죄, 백 번을 죽인다 해도 달게 받겠사옵니다.”
“전 도승지 이석필은 들으라!”
이윽고 임금의 분부가 내려졌다.
“오늘 조례는 그대의 불충과 대역의 죄를 묻고자 함이 아니다. 앞으로 그대에게 일어날 액운에 대하여 근심하고 있을 뿐이다. 나라에서 금지하는 천주학을 믿은 죄와 임금을 기만한 죄는 용서받지 못할 대죄임은 분명하나, 그보다는 미구에 그대에게 닥칠 환란을 안타까워하고 있을 따름이다.”
“전하! 신 이석필, 수삼 년 전에 야반도주한 이래로 태백산 당골에서 산전으로 연명했사옵니다. 신의 대역죄를 청하오니 벌하여주시오소서.”
“경은 말귀를 어찌 그리도 못 알아들으시오. 짐이 안쓰럽게 생각하는 바는,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방도가 없는 일이라서 그를 애석해하고 있는 것이라오.”
그 때 정전으로 요괴스러운 바람이 몰아쳤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살기가 사람들을 압도했다. 어전회의 정전은 간 곳이 없고 삭막한 벌판이 눈앞에 펼쳐졌다. 까마득하게 먼 곳에서 괴물처럼 다가온 물체가 도깨비로 변했다. 흉측한 뿔이 이마에 솟았고, 울긋불긋한 누더기를 걸치고 있었다. 소름이 끼치는 쇠방망이를 들고 시뻘건 선지피를 입에 머금고 있다. 그 뒤로는 팔다리가 부러진 자. 몸통과 머리가 따로 노는 허깨비가 따라붙었다. 맨 마지막으로 줄을 선 도승지의 몰골은 처참했다.
금관조복은 고사하고 찌든 홑바지에 봉두난발이었다. 가시에 찔린 상처에서는 피고름이 흘렀고, 굵은 동아줄이 허리를 옥죄고 있었다.
“그대가 조선국 도승지 이석필 영감인가?”
도깨비가 물었다.
“그렇다. 너희 놈들은 누구냐? 어떤 무례한 놈들이기에 이런 행패를 부리느냐?”
“도승지 이놈! 꼼짝 말고 따라오너라. 우리는 태백산 신령이신 호(虎) 대왕님의 명을 받들어 너를 잡으러 온 창귀(?鬼)들이다.”
창귀의 일갈에 도승지는 풀썩 기운이 빠졌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이미 속마음으로는 모든 것을 체념한 채, 아주 오래전부터 주어진 걸음인 것처럼 창귀를 따라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가시밭길을 지르고 개울을 건너더니 큰 산을 넘었다. 정신을 수습하고 보니 당골 귀틀집이 보였다. 저 앞에서 아내가 마중을 나오고 있었다.
“여보, 내가 왔소. 내가 왔단 말이오!”
그런데 아내는 대답이 없다. 대답은 고사하고 도승지를 알아보지도 못한다. 빨랫줄에 걸린 옷가지를 매만지며 기다리고 있음이 분명한데도 남편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때 다시 창귀가 불쑥 나서며 오랏줄을 이끌었다. 아내가 빨래를 널고 있는 마당을 가로질러 집 뒤로 돌았다. 스무 길이나 넘는 너럭바위가 도승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참회의 기도를 올리면서 성모마리아를 그렸던 그 너럭바위다.
일편단심으로 정성을 모아 그렸던 성모마리아님이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그 너럭바위에서 두 개의 큰 불줄기가 도승지를 쏘아보고 있다. 살기를 띤 광풍이 회오리치더니 도승지의 몸뚱이가 한순간에 너럭바위에 올려졌다. 산천을 찍어 누르는 포효와 함께 무엇인가가 승지의 몸을 섬뜩하게 범했다. 벌떡 일어났다. 꿈이었다.
이부자리에 땀이 흥건했다. 목을 어루만졌다. 모든 게 그대로다. 다시 온몸을 더듬었다. 살아 있다. 엄청 무서운 꿈이었다. 시각은 삼경을 막 지나고 있었다. 꿈은 반대라 하지 않았던가. 좋은 꿈은 흉하게 보인다 하지 않았던가. 천주학을 믿으며 나라에 반역한 죄과가 너무나 엄청나기에 꿈에서조차 벌을 받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침이 왔다. 태백산 골짜기를 하나하나 밟아보기로 한 날이다. 그런데 기분이 썩 내키지 않는다. 글줄깨나 읽은 선비가 하찮은 꿈에 연연해서야 어디 체면이 서겠는가. 서둘러 입성을 차려입고 문을 나서는데 아내가 말렸다.
“여보, 오늘 안 가면 안 되겠소?”
“왜 그러시오? 내가 산에 가는 게 어디 한두 번이오? 산에 사는 사람이 산에 드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거늘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그래도 꿈자리가 너무 뒤숭숭해서…….”
“또 그놈의 꿈타령이오?내 얼른 휑하니 다녀올 테니 묵은 닭이나 한 마리 잡아놓으시오."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원귀들이 당신을 묶어갑디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산에는 제발 가지 마시오.”
“꿈이란 본시 그런 것이오. 당신 요사이 몸이 부실한 모양이오. 닭은 뒀다 뭘 하겠소. 이럴 때 잡아먹으라고 치는 게 아니오. 오늘 저녁에는 닭백숙 좀 먹어봅시다. 내 걱정은 마시고 아이들 단속이나 잘하시오.”
〔6〕
아내의 걱정대로 도승지는 밤새 돌아오지 않았다.
뜬눈으로 밤을 새운 도승지의 아내는 높은 고갯길을 한달음에 넘어서 노인을 찾았다.
“부인은 먼저 돌아가 계시오. 사람들을 깨워서 곧 따라갈 테니 그리 아시오."
노인이 부지런히 발품을 판 끝에 아홉 명이 모였다. 모두들 깊은 산에서 화전을 일구는 형편이라 자신의 일처럼 따라 나섰다.
저마다 쇠스랑과 조선낫을 챙겨들고 노인의 뒤를 따랐다. 여우골, 큰골, 너구리골 등등 태백산의 크고 작은 계곡을 샅샅이 뒤졌다. 해는 서산에 기울고 사람들은 서서히 지쳤다. 허리에 찬 주먹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다시 나섰다. 흔적은 고사하고 그림자도 보이질 않았다. 날이 어두워지자 그들은 찾는 것을 포기하고 도승지네 움막집으로 내려 왔다.
“예전에 장성백이 시덕이 할배 때는 집 뒤에서 찾았는데, 담배 한 대 먹고 가까운 곳부터 다시 찾아보세."
그 때 마침 늦게야 연락이 닿았던 덕술이 청년이 막걸리 한 통을 짊어지고 왔다. 출출하던 차에 막걸리 통을 열어 한 사발씩 마셨다. 산속에 가족들을 두고 온 형편이라 며칠씩 집을 비울 처지도 아니었기 때문에 오늘 찾지 못하면 모두 돌아가야 했다.
당내골 돌석이가 소피를 볼 작정으로 뒤 안으로 돌아가 허리춤을 까 내렸다. 그때 무심코 쳐다본 너럭바위에서 훤한 빛이 나오고 있었다. 그믐달이 어스름한 밤하늘로 달빛처럼 아련하게 비치는 빛이었다. 소피를 보던 돌석이가 놀라서 노인에게 달려왔다. 사람들이 너럭바위로 몰려가 들고 간 횃불을 들이댔다. 그 빛은 바위벽에 그려진 누런 동그라미 속에서 나오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다. 저 그림은 무엇이고 또 그림에서 왜 빛이 나온단 말인가. 궁금했지만 그걸 따지고 있을 처지가 아니었다. 깎아지른 너럭바위 끝자락에서 사람의 옷깃이 걸려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담이 큰 여우골 영석이 아비가 사다리를 타고 너럭바위를 앞장서 올라갔다. 사람들이 뒤를 따랐다. 서너 평은 족히 될 법한 넓은 바위 한가운데 피 묻은 적삼이 널브러져 있었고, 한쪽으로는 몸체가 없는 사람의 머리가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었다.
그 옆에는 뼈골만 남은 팔다리가 푸줏간 사골처럼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처럼 집에서 스무 걸음도 안 되는 너럭바위에서 이런 변을 당하다니. 가까운 곳에 두고 종일토록 온 산속을 헤매고 다닌 것이다. 처음부터 가까운 곳을 살펴야 하는데 그랬다. 뒤늦게 올라온 도승지 부인이 남편의 훼손된 유체를 보고 혼절했다.
사람들이 몸서리를 쳤다. 모두들 산 쪽으로 힐끔힐끔 눈길을 준다. 두려움을 떨치기라도 하려는 듯이 노인이 장작불을 피웠다. 그리고 팔을 걷어붙인 뒤 노인이 앞을 섰다. 한지를 펴놓고 시신을 염하듯이 유체를 수습한다. 노인의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자식 없는 노인에게 이들은 아들이요 며느리요 손자였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깊은 정이 들었던 사람이 아닌가. 시절이 수상해서 그렇지 태평시대에 났다면 정승 판서는 따놓은 당상인데, 일가권속 하나 없는 태백산 골짜기에서 호환으로 가다니, 이렇게 슬프고 가련한 인생이 또 어디 있는가.
이럴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한집에서 같이 사는 건데……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천주님을 맘대로 믿을 수 있는 좋은 세상이 올 거라고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는 좋은 세상이 올 거라고 잔잔하게 웃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일가권속 하나 없는 태백산 깊은 산속에서 호환을 당하다니 이처럼 허무한 죽음이 또 어디 있겠는가. 노인이 소매 깃으로 눈물을 훔치고 일어 섰다.
“다들 이리 모이시게. 염습을 마쳤으니 호식총을 모셔야 하네."
사람들이 노인 주위에 모여들었다.
“수돌이 자네는 철사 꼬챙이가 있는지 찾아보고 그게 없거든 단단한 물푸레나무 작대기라도 구해오게. 그리고 부엌에 들어가서 혹시 떡시루가 있거든 내오고, 그것도 없거든 구멍 난 물 항아리라도 들고 오게. 그리고 형팔이 자네는 헛간에 가서 마른 장작 서너 단을 들고 오고, 다른 사람들은 괭이나 삽자루를 들고 나를 따라오시게."
노인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그리고 일 없는 사람들은 앞개울에서 돌을 주워 나르게. 나중에 다 쓸 데가 있으니까."
호식총 장소는 사람의 발길이 드문 산그늘로 정했다. 호환을 당한 자리에서 해야 하지만 너럭바위에다 호식총을 만들 수는 없는 일이기에 부득이하게 장소를 옮겼다.
노인이 막걸리를 좨주(祭酒)로 절을 했다.
수습한 유구를 판석에 안치하고 장작불을 지폈다. 노인이 큰 소리로 외쳤다.
“망인 집에 불 들어갑니다! 망인 집에 불 들어갑니다!"
바짝 마른 장작이 훨훨 타올랐다. 망인의 혼령이 불꽃을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구멍이 숭숭 뚫린 물동이를 덮어씌우고 물푸레나무 작대기를 빼곡하게 꽂았다. 구멍으로 삐져나온 물푸레나무 작대기의 모습이 꼭 고슴도치가 털을 세운 모양새다.
사람들이 돌을 모아 탑을 쌓았다. 돌탑은 어느 사이 어른의 가슴 높이까지 차올랐다. 이윽고 호식총이 완성되었다. 막걸리를 부어놓고 한꺼번에 절을 했다. 노인이 마을 사람들을 앉혀놓고 입을 열었다.
“자네들도 알겠지만 호환을 당하면 무덤을 만들 수가 없다네. 옛날 어른들의 말씀을 들으면, 호식을 당한 혼령이 창귀가 되어 구천을 떠돌다가 또 다른 인간을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게 하고 나서야 저승으로 간다더라고. 사정이 그러하니 호환을 당한 사람의 무덤이 보통 사람과 같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우리가 이 태백산골에 언제까지 살지는 모르지만 오늘 같은 사건이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모두들 조심 또 조심하시게."
“부인께서는 여기서 산다고 하시지만 그렇게는 안 됩니다. 아비를 물어간 호랑이가 언제 또 해코지를 할지 모르잖소. 그러니 여러 말씀 마시고 우리 집으로 갑시다. 부인도 부인이지만 어린아이들의 장래를 여기서 망칠 수는 없지 않겠소."
“지아비를 호식으로 보낸 년이 무슨 체면으로 어르신 댁으로 갑니까. 죽어도 여기서 죽고 살아도 이곳에 뼈를 묻을랍니다. 신수가 박복해서 지아비를 잃고 혼자 사는 과부가 세상에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닙니까."
남편을 잃은 부인의 입장에서는 딱한 처지임이 분명하지만, 장차 남정네가 없는 산골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여자 몸으로 산전을 일군다는 것은 할 일이 아니다. 오랫동안 부인을 설득한 끝에 이삿짐을 챙기는 노인의 손길이 바빠졌다. 오늘 하루해가 넘어가기 전에 고개를 넘어야 하니 서둘러야 한다. 아이들도 고사리 같은 손으로 이삿짐을 싸는 것을 열심히 거들었다. 그 모습을 보던 노인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왔다.
노인이 손을 털고 담배에 불을 붙여 물었다. 그때 태백산 천제단을 지나는 한 덩이 구름에서 비가 내렸다. 그 비는 청운의 꿈을 끝내 펴보지 못하고 태백산 당골에서 원통하게 삶을 마감한 도승지가 흘리는 원한의 빗방울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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