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클라이밍

[스크랩] 한국 등산문화의 현실[옮긴글]

대구담 2016. 11. 9. 00:20

얼마전 방송에서 '독도가 어느 나라 땅이었으면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한국 체제경험이 있는 외국인들이 거의 대부분 일본 땅이었으면 한다. 라는 답변을 냈다.   그리고 그 이유는, 한국 사람들이 '너무 더럽기' 때문이었다.      부산 서면에서는 쓰레기 투기에 대한 경각심을 위해 이틀간 미화원들이 파업을 했고, 사람이 살 수 없는 수준의 아수라장이 벌어졌다. 
 
현재 나와 있는 통계로 한국에는 등산을 하는 인구가 1500~1800만명이라고 한다.  등산화를 가지고 1년에 한두번이라도 산에가는 인구를 집계한 것이기에 부풀려진 감이 없지 않겠지만, 적어도 세계적으로 유례를 볼 수 없을 정도의 인원이 등산을 하고 있다.
이들은 배낭안에 대부분 화기와, 찌꺼기가 많이 나오는 한국식 식량을 가지고 산행을 한다.  물만 끓이고 쓰레기가 남지 않는 타국의 등산식문화와는 근본적 차이를 가지고 있다.  
 
주변에 아이가 있어도 담배를 피는 것을 꺼려하지 않고, 쓰레기를 가지고 돌아오는 이들은 매우 적으며, 등로에서의 질서도 잘 지키지 않고, 거의 대부분의 집단이 의료기준상의 폭음을 하고서 고성을 내고 행패를 부린다. 1000만명이 넘는 낮은 시민의식의 들쥐 떼가 매주말 산을 쏠아먹으러 풀어지는 것이다.  
 
해외를 다녀보면 알 수 있지만, 이 정도 경제 수준과 교육 수준을 가진 나라 중에서는 한국인 가장 낮은  질서 의식을 가지고 있다.   가장 시끄럽고, 가장 더러우며, 질서를 지키지 않고, 지적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고 반발을 한다.
수준은 낮은데다 염치가 없는 것이다.    
한국인들의 나쁜 점 중의 하나가, 스스로의 잘못을 보지 않고 미화하려고 하는 점이다. 기분은 좋을지 모르지만 이래서는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다.   
 
산악인이라는 말들을 쓰고 있는데, 지금 한국에서는 산악인이라는 말에 실체가 없다.  이전에는 로프를 메고 남들이 가지 않는 곳에서 어려운 등반을 하는, 등반력이 산악인의 증명이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10년전에 100명을 넘지 않던 13그레이드의 등반이 가능한 이들이 숱하게 널려 있다. 아이들은 반년만에 13을 해내기도 한다.  장비와 기술의 발달로 토왕도 한달 교육을 받고서는 후등으로 따라갈 수 있는 그런 곳이 되었다.
이제는 등반력으로 산악인을 잴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도덕성이나 의식 수준으로 산악인을 평가하기에는,
이전 세대의 소위 자칭 산악인들은 유명하고 하지 않고를 떠나서 후배들에게 무수한 폭력을 휘둘렀고, 갖은 무질서를 방만하게 저질렀던 일들을 자랑스럽게 술자리에서 떠들어댄다.
어느 등산학교의 강사를 하는 한 선배는 빙장에서 남이 고정시켜놓은 로프를 사람이 없다고 양해도 없이 등반하고, 이미 픽스된 로프 위에다 다시 줄을 깔아서 먼저온 사람이 등반도 못하게 하는 지경이었다.   선운산에서 13을 한다는 한 선배는 애를 데려와서는 하루 종일 시끄럽게 떠들게 풀어 놓고 남의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대도 사과하는 일이 없었다.    등반지에서 고성을 내다가 지적을 하면 되려 화를 내는 일은 다반사다.  
 
주말이 지나면 한때 폐쇄 문제로 논란이 됐던 북한산 야영장에는 토사물과 분변과 쓰레기가 넘쳐 났었는데, 밤새 노래를 부르고 떠들어 대다 술에 취해 약수터 근처에다 변을 내갈기는 경우도 심심치 않았다.  이런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산악인의 실체다.
등반력도 도덕성도, 인터넷 산악회나 동네 암장에서 취미로 플라스틱 홀드를 잡는 학생들보다 못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밤새 술을 마시고 놀아난 사진과 후기들이 버젓이 인터넷에 올려지고, 그 야영장에서 잘 수 없는 이들은 그것들을 쉽게 검색해서 볼 수 있다.  
 
나는 아쉽게도, 주변에서 이런 말을 제법 들었다.
'저런 것들이 산악인이라고?' 
 
지금 산악인이라고 할 수 있는 기준이라고 한다면 겨우, 각 시도 연맹에 회비를 내는 등록 산악회 정도일텐데, 그 안의 면면을 보면 도덕성이건 등반력이건, 산을 위한 활동이건, 회비를 낸다는 것 말고는 그들이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어떤 근거가 부족하다.
지금 원주에서 비닐 뒤집어 쓰고 케이블카 반대 농성하다 잡혀간 분들은 산에서 대단한 돈 벌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 별로 없으신 분들이다. 그런 분들은 아쉽게도 사실 거의 없다.  
 
1000만명의 들쥐 떼와 다를 바가 없는 상태인 것이다.  
 
해외에서는 공단이 아닌, 산과 법률이 통제를 한다.
일본에서 북알프스를 들어가려고 하면, 일반 차량은 진입이 불가하다. 도쿄에서 가려고 하면 대중 교통 왕복 차비만 20만원 정도가 든다.  3000미터에 달하는 고산이고 일주일씩 폭설이 내린다.
그리고 사고가 생겨서 구조 비용이 발생하면,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사람이 줄고, 조심을 한다.
그런 곳에서 조차,
'너한테 말하기는 좀 미안한데, 한국인들 때문에 미치겠다' 라고 나에게 하소연을 해온다.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공단에서 북한산을 통제했는데, 만약 통제를 하지 않았다고 생각해 보자.
북한산은 고도에 비해 만만치 않은 산이기에 혈관 계통 환자나, 경우에 따라서는 조난자가 나올 수 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한국 사람들은 대체로
왜 통제 하지 않았느냐
왜 빨리 구조하지 않았느냐
로 송사를 건다.  구조 비용도 대부분 국가에서 부담한다.
사상자가 나오면 관리직에 있는 사람은 위 아래에서, 언론에서 공격을 받는다.   한국 조직 사회는 그런 상황에서 논리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희생양을 찾는다. 공단 입장에서는 죽는 사람 줄이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소위 산악인이라는 사람 중에도 빙벽 등반 중에 본인 부주의로 사고가 발생했는데 운영자에게 송사를 거는 사람들을 나는 보았다.
대부분의 인공 빙장에서 돈을 안 받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볼트에 문제가 있어도, 등로의 안전장치에 문제가 있어도, 송사를 건다.    호시탐탐 어떻게든 푼돈이라도 울궈내고, 누군가에게 책임을 돌리려고 하는 것이다.
허가를 받지 않은 등반에 벌금을 안내는 것을 자랑스러워 하고,
보험사 상대로는 나는 등반 아니고 그냥 지나가다 다쳤다라고 보험금을 받아낸다.      
 
정말로 제대로 등반을 하고 산악인으로써의 순수성을 관철하고 싶다면, 현재의 월사금 내는 도덕성과 실력의 근본이 없는 연맹체계가 아니라, 자격과 면허를 부여하고 그 기준에 의해서 험지에서의 등반을 순수 자기 책임하에 허가하는 방식이 아니면 시기심 많은 한국 사람들은 인정해주지 않을 것이다.  
 
산에 대해 순수한 의지를 가지고 나는 그러지 않겠다라는 마음을 가진 이들이 드물게 있을지는 모르나, 공단이 상대해야 하는 것은 1000만이 넘는 낮은 시민의식의 들쥐떼들이다.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지게 된다 라는 말이 있다.
지금 공단의 수준은, 지금 한국 산객들의 수준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에 있고, 우리에게는 좀더 강력한 통제가 필요하다. 
 
그것을 피하려면, 그것을 말할 자격을 갖추어야 하는데,
불행하게도 주변에 나서서 그런 말을 떳떳하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출처 : 산에서 꿈꾸는 지기지우
글쓴이 : 한상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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