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스크랩] 폭행 처음부터 윤일병을 구제할 방법이 군대엔 없다

대구담 2014. 8. 7. 11:54

1991년 8월 나는 공군에 입대했다.

구타가 존재했다.

허벅지가 찢어졌다

우리 고참은 이가 부러졌다.

하루 3교대 보초를 섰다

난 공군에서 헌병 특기를 받았다.

나는 목장이라는 탄약고에서 3년 동안 근무했다.

그곳은 관리자 부사관들도 오지않는 부대와 4킬로 떨어진 곳이었다.

선임하사는 중사였는데 이 놈은 부대와서 병장들을 꼬시고 매번 술을 쳐먹고

잠이나 잔다.

내가 휴가갔다와서 받은 용돈을 관물함에 넣고 근무 나갔더니 지갑안에

있던. 돈이 없어졌다.

범인은 누군지 안다 ...

말한마디 못했다.

고참들은 밤마다 근무서고 온 우리를 구타한다.

군화를 왜 닦지 않았냐

하이바는 왜 더럽냐

왜 내침구는 깔아 놓지 않았냐..

밤마다 불려 나갔다 고참의 초소로...

그럼 우리는 엎드려 뻐쳐를하고 당구 큐 손잡이로 허벅지 를 맞았다.

맨 마지막 내가 맞은 회수만 50대가 넘었다.

다리 허벅지가 찢어 졌다.

나는 부모에게 말할수도 없었다.


난 헌병특기 였다.

내가 고참을 고발하면 우리 부대 수사계에서 고참들의 수사를 제대로 할까.

수사계장은 우리 부대 부사관 중심의 관리자 였다.

군 검찰은 어떻게 수사를 할까.


결국 집에 외출하다가 샤워하던중. 아버지가 보셨다 허벅지가 찢어진것을...

잠만자고 가는 나를 이상하게본 아버지가 넌 부대에서 잠도 안재우냐..

3박 4일 외출을 나갔다가 부대로 복귀한 다음날.. 아버지가 면회 오셨다.

면회실에서. 나갔다. 


면회를 오신 우리 아버지...

면회실 담당 고참은 병장이었다.

우리 아버지 부대장 면담 요청한다고 하면서.. 면회실 고참 에게 부대안에 연락하라고

한다.

부대장은 중령이었는데 면회를 거부했다.. 


우리 아버지는 50센티 칼로 군복을 잘랐다...

피멍이 들어 찢어진 허벅지가 드러 났다.

면회실 고참한테 메세지를 남겼다.

니그들이 내자식 이렇게 팼냐..


부대장 한테 전해라 우리아이 집에 대려 간다.

면회실이 5시 까진데 그때 까지 안오면 군 검찰에 부대장 및 선임하사

전부 고발하겠다고..


나는 면회실에서 군복이 찢긴채 있었고 면회실을 지나가던

타특기 간부들이 나의 모습을 보았다.


우리 부대가 전부 뒤집어 졌다.


만약 나의 아버지가 없었더라면.. 나는 아마 윤일병 처럼 죽었을지도 모른다.


난 지금도 나를 폭행했던 그 고참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솔직히 지금 생각 해보면 이렇다..


구타를 당했다면. 군 검찰에 소속 부대장 고참 까지.전부 고발해라..

아니면 군 검찰에 고소하기 실으면 검찰에 직접 고소해라..

접근 금지 처분 신청도 해라..

그다음 군복무를 해라..

아니 영창에 라도 보내달라고 하는것이 좋을거다..

영창에서는 구타는 적어도 할수 없다.


죽는것 보다는 훨씬 낫다.

난. 내 아들 군대 보내면 불시에 면회가서 옷벗겨 볼거다.

그리고 머리 부터 발끝까지 만져 볼거다.




출처 : 경제
글쓴이 : 줄탁선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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