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스크랩] Navy Seal / UDT <18기>추억의 글 !

대구담 2014. 1. 22. 22:17


맨 좌측 끝에 앉아서 무릅싸고 있는 해병대 김영빈 중위<벤허> 와

맨 우측 서서있는 해병대 중위 계충교중위(대령 예 해사25기)



개원식에 함께 해주신 UDT 의 원로분들.감사드립니다.
특히 당시 훈련대장 조광현 대장께 감사드립니다.
이세상을 살아오는 동안 힘든일이 많았지만 그때마다 내가 UDT 훈련도 받았는데 이정도야..

.하는 마음으로 항상 열심히 살았습니다.
바쁘신중에 참석해주셔서 격려와 축하를 해주셨다.

# 맨위에 있는 사진.
왼쪽부터 UDT28기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산악인 엄홍길대장.현 UDT 전우회 박노현회장,

UDT원로 이신 김성명  옛교관,UDT의 조광현 예비역 대령께서 참석해 주셨다.

조광현대령은 미소 요양센터의 박흥일 이사장을 훈련 시키신 분이기도하다.
70세가 넘으신 나이에도 아직도 마라톤 훌코스를 거뜬없이 뛰시고 ...

이번에 개원식에 참석하기 전 2주동안에도 인천에서 출발 부산까지 날씨가 상당히 좋지 않았는데

요트로 거뜬하게 돌파하고 오셨다.


그외에 참석해주신 UDT 대원들 감사드립니다.
특히  18기 동기생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UDT경기남부회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당시 훈련을 받을때와 같은 마음으로 포기하지않고 열심히 노력해서 진짜 이같은 시설이 필요한 노인들을 위한 훌륭한 요양원 시설로 만들어 갈 것입니다.

동기생들이지만 이제껏 살아오면서 휼륭한일들을 많이한 친구들이 나라를 위해서...
1972년30명이 18기를 수료했지요.


내 기억에.
그당시는 대한민국에 UDT 대원이 100 명이 조금 넘는정도 동기생들간에 나름대로의 자부심만은 대단했지요 .
아직까지도.. 내<미소 요양센터 이사장>기억과는 훈련생도의 숫자가..그외에 약간 틀린점이 있는것 같으나 아랫 해병대 김영빈 선배님께서  직접 쓰신글이라 수정을 하지 않고 그냥 올려 봅니다.


=====================================================================================================================================


이글을 쓰신 당시 김영빈위는 UDT18기 수료후

해병북파특수공작관으로 MIU<74->,

중앙정보부 대북공작단 특수공작관으로<78->

해병대 특수수색대 대장을 역임,

예편후 쌍룡그릅 차장으로,

83년 미국으로 이민 ATS신학대학원을 졸업 C&MA 교단에서 목사안수(86) 목회 22년,

정년퇴직후 지금은 미국 하와이 버클리신학대학원 조직신학교수님으로 수고하심.

<저서:흙에서 천국까지/광야의 식탁>


1981년으로 기억되는데. 해병특수수색대 창설이후 장거리 수영을 처음 시작했지요, 포항 제철제3부

두에서 약 1시간PT로 몸을 푼 다음, 응급 환자 발생에 대비 frp 고속정을 모함으로 삼고,

IBS 3대가 대원들의 상태를 파악 무전기로 연락하면서 약전 방파제까지 장거리 수영을 하였는데

거리는 기억이 나지 않고, 둘씩 짝을 지어 출발 시켰고, 중간 중간 쯤 에서 눈깔사탕을 입안에다

넣어 주었더니 목마름이란 고통에서 벗어날수가 있었다 고 들 합디다.


기억상으로두명이 기권을 하고 모두 좋은 성적으로 약전방파제 부두에 상륙 하여 기념촬영을

할때 언제 추었더냐? 조금도 추운 기색없이 모두 늠늠한 모습으로 기념촬영에 임함을 보고

역시 해병은 해병대다!


나 는 1972년 UDT/SEAL18기로 입교하여 21주간의 훈련중 15주간은 동해안에 위치한 양양군

현북면 기사문리에 위치한 해군 25 전진기지에서, 사실 UDT 창설이후 최초로 16주에서 21주로

또 후반기 15주간은 진해만에 수온보다 수온이 낮은 동해안 해군 전진기지에서 그 것도 UDT대장

조광현 소령인데(신전무님보다 1년 선배) 교육대장 당시(중위)100여명이 입교하여 오직 7명만 수료 시킨,

숫자에 관계 없이 특수요원이 될  자격이 있는 자들만 가르치는 분인데, 밤새도록 술마시고

아침 구보에 따라갈 자가 없다 싶이 강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수퍼맨입니다.


오 래전에 UDT 전우회 회장을 역임하셨을때 만나서 점심을 대접해 드렸는데, 과거에 술을 많이

마신 결과로 큰 수술을 하는 바람에 술은 전혀 ....그리고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리고져 UDT 요원으로 편성 독도까지 장거리 릴레이 수영을 성공리에 끝마쳤는데 그만 정치적으로

문제를 야기 하는 바람에.....


동 해안 파도와 낮은 수온을 무릅쓰고 매일 1.5마일 수영을 하다가 마지막 장거리 수영 4마일을

하였는데 실제 거리는 표류를 계산 하면 7키로가 넘었다고 합디다. 주문진 앞바다에서 출발 기사문리

(38선) 앞 조도를 돌아서 방파제까지였는데,


처 음 출발시는 파고가 낮았는데 조도 섬을 돌때 파고가 높았으며 해군의강철수는 그 파도를 잘 이용

하여 1위로 골인 하였지요. 역시 물개는 다릅디다.이사람 진해에서 태여나 거기서 자란 사람이라 조류

를 잘 타기도 하며 워낙 힘이 좋아 씽씽 나릅디다.또 나이도22살 밖에 않되었고 나는 30살이였지요,


그때  UDT 교관들이 내 나이를 보고 저사람은 지옥주 쯤에 갈것으로 판명을 내렸다고 합디다. 왜냐하

면 UDT 창설이래제일 나이가 많은 사람이 해병대 이한종소위(65년/해간26기) 26세였는데 내가 30살

이라면 할베지요,


당시에 교육대장은 미국 udt/seal/eod를 나오신 위에서 언급한 그분!

얼마나 사람을 죽이는지! 이분을 내가 개명을 시켰지요. 조악마로!


입교 3일전 나는 이발소에 가서 백호로 눈섭까지 밀고 포항 도구 동문 위병소 지붕 위에다가 중위 계

급장과 명찰을던져버리면서, 진해로 갔습니다.

선 서식 하루전에 훈련대장 한테  해병대 전원 외박을 얻어 경화동 어느 술집에서 10명이 술을 마시면

서 다짐을 했지요,


그때 당시 나는 늘 단검을 휴대하고 다녔답니다. 단검을 술상에 꼿고 갈 사람은 지금 가야지 훈련 중

에는 절대로 못간다 만약 가고자 하는 대원은 이 단검이 용서치 않을 것이다.

모두들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고  다짐하면서  밤새도록 술을 퍼마시면서 새벽 동이 틀 때 귀대를 하

였지요.


우리해병대 들은 이렇게 외쳤답니다.


나에게는 계급이 없다.


나에게는 이름도 없다.


나에게는 휴일도 없다.


나에게는 인격도 없다.


그러니 늦가을에 만나자.(5월입교10월말경수료)

처 음 입교할때는 공군첩보대(osi)에서  15명, 육군 첩보대(hid)에서 15명, 그리고 해군은 101명, 해병

대에선 장교는 포항 수색대에서 나하고 계중위(수색7기,해사25기, 대령예편),그리고 연대에서 지원한

하사관 8명 모두 10명이 입교했는데 4주만에 공군(osi)은 전원 퇴교 하였고,

육 군(hid)은 박중위(나중에 정보사령관)한명만 남고, 해군은 장교 1명과 하사관  50여명, 해병대는 하 

사관6명모두 퇴교하였고 장교 2명(김영빈/계충교),  5개월(21주) 만에 수료식때 보니 처음 140명 입교

했는데 수료자는 30명,  

그중에 해병대가 참모총장, 그리고 사령관 상을 받았지요.

장거리 수영(8km)


1위: 해군팀인 강철수하사(UDT원사제대,2시간40분> 와 박흥일 일병.<나하고 파트너인 강철수만 기억

을 하셔서 박흥일은 내가 직접 써넣었다.당시 나이는 내가 제일 어렸다. 참고로 강철수는 지금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교회 집사님이다.>


2위: 해병대팀 2시간 42분

그러나 80m잠영,60ft 스킨 다이빙 성적은 내가 좋았지요.


장시간 동해안 어름과 같은 찬 파도를 가르며 차고 나갈때, 교관 몰래 담배2가치와 성냥을 폭약훈련시

사용하는콤돔에 싸서 빤쓰 속에 숨겨 놓고 얼마쯤 가다가 아주 골초인 계충교 중위가 보좌관님 추운

데 불좀 핍시다! 


교관을 태운 IBS가 멀리 갈때  담배는 맞있게  피었는데,  그만 목마름의 갈증은 어떻게 할수가 없어서

바다 물좀 먹고 두통 때문에 수영하면서 많은 고통을 뼈 져리도록 느꼈답니다.


내가 수색대장이 되어서 수색대 창설 이후 최초로 장거리 수영 훈련을 하는 대원들 일일히 접근하여

격려하며 입안에레몬 누깔 사탕을 넣어준 추억이 그립습니다.

지금쯤 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참으로 보고싶은데....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그들의 가정과 사업과 자녀와 그리고 건강위에 축복이 넘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고무뽀드를 타고 장거리 수영을 하는 대원들에게 일일히 입안에 레몬누깔 사탕을 입에 넣어주고 있는 김영빈 해병특수수색대장 <벤허>



2명 기권 모두 좋은 성적으로 영일만 약전 방파제까지 상륙한대원들은 지치고 피로한


기색을 숨기면서 기념촬영에 임함을 볼


훈련을 가르치는 책임자로서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답니다.


ㅏㅏ



=============================================================================================



 운석이는 현대건설에서 공사한 인도양에서 사우디에서 흑해에서 1970년대말기에서


1980년도 중반까지
물속에서 다이버일을 열심히 하면서 국익에 일조하였고


<당시 열악한 환경에서 목숨을 걸고 물속에서 공사현장에서 일했다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UDT선배를 보내며 오랫동안 마음을 아파했다. 


석민이는 약40년가까이 아직도 우리나라 남쪽에서 물속에서 일한다.


아름다운섬 홍도의 방파제등이 석민이가 현장에서 열심히 일해 만들어낸 작품이다.

흥태는 인천에서는 오잠수 하면 다통한다.



특히 얼마전 천안함 사건때는 한달간 현장에서 작업반장으로 일하면서 천안함을


물위로 올려냈다.


박효길중위는 UDT대장을 역임했고 김영빈중위는 해병대 수색대대장을 역임했고


박복규중위는
육군 첩보대장을 역임했고<계급은 당시 훈련 받을때의 계급이다>


 

형준이와 운영이는 인천으로 올라와 국가 유공자가 되었고...

철 수와 성군이는 UDT에서 36-37년간 근무하면서 나라에 이바지했고


<철수는 해국사관학교에서 생도들 태권도,수영등을 가르쳤고 성군이는


옛날 국군의날 행사때 3군<육,해,공군>이 합쳐서 태권도 시범을 보일때 맨앞에


태권도 시범을하던 친구다.


나머지 동기생들도 이나라의 휼륭한 일꾼으로 지금까지 열심히 현장에서 뛴다.



특히 해병대 수색대대장을 지내신 김영빈중위는 소령으로 제대후에 지금은


미국 버클리신학대학원 교수님이다.



방태백이는 오래전부터 미국에서 태권도 사범으로 열심히 일하고



장주병이는 동기회회장.UDT전우회 부회장직을 맡아 열심히 봉사하고 있다.

당시 훈련사진등을 보며 모처럼 옛이야기를 나누어본다.이제는 다들 환갑이 다 넘은 나이들이네...



이사장과 동기생인 운석이가 교관으로 열심히 뛰는 모습도 보인다.

조광현 대장은 지금 70살이 넘으셨는데 지금 이시간에 태평양을 건너 한국으로 건너오시는 중이다.



조그마한 요트로 그리고 바람과 싸우면서....약50일이 소요되는 대장정이다.



얼마전에는 중국에서 한국으로 요트로 건너오다가 날씨가 나뻐



고생을 크게 하신적이 있다.

미소의 이사장도 동참할번 했으나 다음 기회로 미루고.....



이곳 한국에서 조광현 대장의 무사 귀국을 바라며 기도를 드리고있다..



아무쪼록 아무일 없이 무사히 돌아오시기를 기원합니다


                      박흥일


------------------------------------------------------------------------------------------------------------------------------------------

김영빈 목사님에 대한 것을 더 보시려면 아래를 크릭.

해병특수수색대의 무기 은밀, 신속 ,정확

http://blog.daum.net/oldbenhur/8122607


출처 : 벤허
글쓴이 : Benhur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