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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한국 산악계는 슬픔에 빠졌었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 남서벽에 새 길을 내겠다는 각오로 등반을 펼치던 박영석 원정대의 오희준(吳熙俊·사고당시 37세)·이현조(李鉉祚·당시 34세) 대원의 예기치 못한 사고 때문이었다. 5월15일 남서벽 C4(7,900m)에 올라 잠을 자던 이들은 이튿날 새벽 1시45분경 텐트가 무너져 내리면서 1.300m 아래 빙하지대로 추락,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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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길’의 무대로 등장하는 에베레스트 남서벽의 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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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석과 함께 에베레스트·북극점·남극점을 일컫는 3극점 탐험에 성공한 오희준은 당시 엄홍길·박영석·한왕용에 이어 8,000m급 14개봉 완등의 기대를 모으고 있었고, 이현조는 2000년 마칼루·브로드피크·시샤팡마 3개 거봉 등정으로 고산등반계에 혜성과 같이 등장한 이후 몇 년간 멈칫하다가 2005년 낭가파르밧 횡단 성공으로 거벽등반가로서 도약이 기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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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뛰어난 등반을 펼쳤기에 두 사람에게 거는 산악인들의 기대는 매우 컸었고, 그렇기에 두 사람의 사고는 한국 산악계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던 것이다. 이들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오른 에베레스트 남서벽의 등반기록을 담은 다큐멘터리 산악영화가 ‘길(The Way)’이란 타이틀로 7월 중 전국 개봉관에서 동시 개봉될 예정이다. 이 영화는 에베레스트 한국 초등 30주년을 맞이한 대한산악연맹 ’77 원정대의 베이스캠프 트레킹과 박영석 원정대의 남서벽 원정이 함께 나온다.
“나는 마음을 비웠다. 이제 공은 너희 것이다”
영화는, 힘찬 붓글씨체의 ‘길’ 자와 함께 ‘2007년은 한국 에베레스트 원정대가 등정에 성공한 지 30년이 되는 해다. 이를 기리기 위해 박영석 대장은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새로운 길을 내는 원정대를 구성했다. 30년 전 에베레스트를 올랐던 원정대원들도 베이스캠프까지 이들과 함께 했다. 이 영화는 에베레스트 남서벽 원정대에 대한 기록이다’는 자막과 함께 막을 연다. 소란스러운 분위기의 카트만두 공항에서 시작한 영화는 77 원정대원들의 에베레스트 베이스트레킹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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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세계 최고봉 등정의 꿈을 가지고 에베레스트를 향해 걸었을 이들은 이미 노년에 접어들고 있지만 모두들 30년 전으로 돌아간 듯 낭만과 장난기 넘치는 분위기에서 베이스캠프로 향한다. 반면 남서벽 원정대는 캐러밴 기점이 루클라로 향하는 프로펠러 비행기가 착륙 직전 짙은 안개로 인해 다시 카트만두로 회항하는가 하면 캐러밴 초반 짐을 나를 야크와 포터가 없어 쩔쩔매는 등 초반부터 애를 먹는다.
텡보체에 도착한 남서벽 원정대가 박영석 대장과 함께 등반하다 목숨을 잃은 악우들의 추모탑에서 제를 올린 뒤 페리체(4,200m)에 도착하자 먼저 도착한 77 원정대 선배 산악인이 반겨준다. 이 날 밤 선배들이 후배들의 성공을 기원하기 위해 연 파티는 ‘설악가’, ‘에델바이스’, 그리고 네팔 민요 ‘렛삼피리리’로 이어지고, 로지에 투숙한 세계 여러 나라의 트레커들이 동참해 밤늦도록 흥이 무르익는다.
이튿날 페리체에서 베이스캠프로 향하는 선후배 산악인들의 모습은 무척 대조적이다. 20~30대가 주축인 남서벽 팀은 발걸음이 가볍고 표정도 밝다. 그러나 77 대원들의 발걸음은 무겁기 그지없다. 그런데도 선후배가 어우러져 설산이 도열한 산길을 따라 오르는 모습은 너무도 아름답다. 30대 중반인 이재용 대원은 “77, 07이 동행하는 게 너무 고맙다”고 하고, 20대 후반인 김영미 대원은 “평소보다 컨디션이 좋다. 정상까지 이렇게 가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히기도 한다.
남서벽 원정대는 빠른 속도로 트레킹을 진행해 한국산악회 실버원정대 베이스캠프(5,400m)를 방문하고 하산 중인 77 선배들을 고락셉(5,180m)에서 만나 격려와 등정주를 받으면서 인사를 나눈 뒤 베이스캠프로 올라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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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부터) 고 오희준 대원. / 고 이현조 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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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8일, 드디어 등반 시작이다. 어슴푸레한 새벽녘 아이스폴로 들어서는 대원들의 모습은 악마의 입으로 뛰어드는 것만큼이나 섬뜩하게 느껴진다. 이들이 한 발 한 발 오르는 아이스폴에는 악마의 입처럼 무시무시한 크레바스와 당장이라도 무너져내릴 듯 위압적인 빙탑이 수없이 솟아 있다.
이 날 등반에서 C1(6,000m)까지 겨우 오르던 대원들은 회를 거듭할수록 속도가 빨라지고 두 번째 세 번째 등반 때는 전진캠프인 C2(6,400m)까지 당일 정오경이면 도착할 정도로 빠른 적응력을 보인다. 대원들이 C1에서 C2로 향하는 사이 서서히 남서벽이 그 위압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하단부는 하얀 눈이 덮여 있지만 중단 이후로는 시커먼 벽이다. 위로 오를수록 커다란 혹이 튀어나온 듯해 괴기하기까지 하다. 남서벽 등반을 앞두고 박영석 대장은 대원들을 소집한 자리에서 “나는 마음을 비웠다. 이제 공은 너희 것”이라며 다시 한 번 자신의 마음을 밝힌다.
남서벽은 역시 험난한 거벽이었다. 체력과 경험에 관한 한 대원 한 명 한 명 뛰어난 클라이머이지만, 등반을 마치고 C2로 내려설 때면 하루 사이에 몇 년 늙은 것처럼 피폐해졌다. 그래도 이들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한 발 한 발 오른다는 데에서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이현조는 “굉장히 빡세네요. 이제 2,000m만 더 오르면 된다는 생각으로 등반한다”며, “낭가파르밧 루팔벽에 비해 짧지만 셰르파들이 속을 썩이고 염소(식량)가 빨리빨리 올라오지 않아 답답하다”고 상황을 전해준다.
남서벽 등반 나흘째. 설벽 구간을 지나 바위지대로 접어들면서 남서벽은 악마의 성과 같은 칙칙한 분위기를 드러낸다. 이 날 대원들은 루트를 찾아 헤매다 오희준과 이현조 2개조로 나뉘어 루트를 개척하고, 애를 썼지만 “지금 설악산에 연습하러 온 거냐”는 박영석 대장의 호통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박 대장은 대원들의 실수에 대해 이렇게 야단을 치면서도 자신이 직접 빚은 만두와 루클라에서부터 짊어지고 올라온 수박을 썰어놓고 대원들을 격려하는, 따스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다시 남서벽 등반. 12kg가 넘는 무거운 짐을 지고 해발 8,000m대 거벽을 오른다는 것은 엄청난 체력 소모를 가져온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대원들은 해발 7,300m 높이의 암부에 C3를 구축하고 까치집이라 명명한다. 대원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첫 번째 목표를 달성했다는 데에서 오는 성취감에 밝은 표정이다. 창 밖으로는 800m 높이의 절벽이지만 흰 구름을 뚫고 솟구친 로체와 눕체는 석양에 반짝이며 환상적인 풍광을 자아낸다.
죽음을 살아내고자 한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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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서벽을 주마링 등반하는 박영석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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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반은 이 날 이후 더욱 어려워진다. 박 대장이 10년 가까이 등반해오면서 형제처럼 지내온 사다인 장부 셰르파를 비롯해 8명의 셰르파 중 4명이 지나치게 많은 돈을 요구하며 스트라이크를 일으킨 뒤 하산해 버린다. 돈도 돈이지만 이들은 남서벽의 험난함에 겁을 집어먹은 것이다.
이 날 이후 원정대는 식량과 장비 수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애를 먹는다. 게다가 C3에서 하룻밤 묵은 정찬일은 심한 고소증세로 하체 무기력 증세까지 보이다 이튿날 어렵사리 C2로 내려선다. 박 대장은 그래도 무사히 하산한 정찬일을 반겨주지만 찬일은 원정대에 패를 끼쳤다는 미안함에 텐트 안에도 못 들어간 채 장비 텐트에 쌓아놓은 산소통 더미에 기대어 애처로운 모습으로 잠에 빠져들고 만다.
5월8일. 어버이날이란 얘기를 들은 박 대장은 ABC의 대원들에게 인공위성전화기를 건네주면서 부모님께 안부전화를 드리라 하고, 이형모 대원과 정찬일 대원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아무 이상 없다 전하지만 표정을 금세라도 눈물이 터져 나올 듯하다.
다시 남서벽. 해발 7,350m 지점에 올라선 오희준은 로체와 눕체 등 웨스턴쿰 일원의 고봉들을 설명해준 다음 설벽을 오르며 “이렇게 무거운 짐을 메고 8,000m 산을 등반하려니 다섯 발자국을 걷는 것조차 힘들다”고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C2에서 대원들이 머물고 있을 때 몰아친 강풍은 여러 나라의 캠프를 무너뜨리고 날려버리는 등 C2가 아수라장이 되었으나 다행히도 까치집은 안전하다. 이형모 대원은 해발 8,100m 지점까지 올라 쿨와르 상단부의 루트 상황을 파악하고 하산, 원정대는 곧 정상에 다다를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들뜬다.
드디어 정상공격의 날이 왔다. 오희준과 이현조가 15일 새벽 C2 출발을 앞두고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데 전기가 나가버린다. 헤드랜턴 불빛에 식사를 마친 오희준과 이현조는 칠흑 같은 어둠을 헤치며 남서벽으로 향한다. 출발에 앞서 박 대장은 “이들 두 사람이 보고 판단하는 모든 것을 믿는다”며 10년 가까이 한 지붕 아래서 살아온 후배들에 대한 믿음을 밝힌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길을 좇고 있지만 거대한 남서벽에 매달린 그들의 모습은 너무도 보잘 것 없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이 날 등반을 마치기 직전 정상공격에 대한 계획을 세운다. 다음날 새벽 2시 등반을 시작, 로프 두 롤 400m를 더 깐 다음 C4로 내려왔다가 그 다음날 정상을 올려친 다음 남동릉 노멀루트를 따라 하산하겠다는 계산이다.
결전의 날을 앞둔 두 사람은 이미 짙은 어둠이 스며든 C4 텐트 안에서 드러누워 짤막한 대화를 나눈다.
“오늘 몇 시간 걸은 거냐?”
산소마스크를 쓴 상태에서도 무척 지쳐 보이는 현조는 희준의 질문에 “10시간”이라 단답식 대답을 한다. 이들 두 사람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목소리이자 이현조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이 날 밤 해발 7,500~8,300m 사이에서 소리 없이 내린 눈이 쌓이고 쌓이더니 이튿날 새벽 1시를 넘어서면서 텐트를 압박해왔다. 공간이 좁혀지자 답답함에 잠에서 깨어난 오희준은 새벽 1시45분경 BC의 박영석 대장에게 탈출을 시도하겠다고 무전을 날렸다. 그러나 잠시 후 “솨악~” 하는 소리와 동시에 교신이 끊기고 말았다. 눈사태가 오희준과 이현조의 텐트를 덮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