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트,보트

[스크랩] 꿇어 앉을 수 밖에 없었다.

대구담 2013. 3. 6. 22:17
일본 동경위 치바현의 카모가와에서 파도가 3미터 정도인 가운데
출발했다. 날씨도 추웠다. 일본 다른 지역에서는 눈이 오는곳도
있었고 3월 하순인데도 부산에서도 눈발이 날린다고 할정도로
이상기온인듯한 날씨가 계속됐다.

어쨌던 겹겹히 옷을 껴입고 그위에 마지막으로 요트복을 입었다.
파도의 끝이 살아 있는듯 춤을 추고 있었고 앞쪽에서 바람을 타고
선미쪽으로 날려와 바닷물을 스프레이처럼 계속 뿌려대었다.
그러나 우리는 서쪽으로 서쪽으로 오직 서쪽으로만 나아가고 있었다.

메인세일은 2단축범했으며 짚세일도 반정도만 펼쳤다. 각도가 크로스
홀드보다 훨씬 안쪽이었으므로 짚도 시트를 이용하여 중간정도에 위치
하게 했다. 여태껏 풍상으로 각도가 가까울때는 메인만 가지고 항해를
했었는데 짚세일도 중앙에 오도록해 작게 펼치니 속도도 조금 더 붙고

선체도 훨씬 안정이 되었다. 엔진을 가동하면서 세일을 사용하는것은
약간 다른 테크닉이 필요한것 같았다. 그것은 계속되는 경험으로서
체득되는것 같다. 엔진을 풀가동해가며 4노트의 속도로 앞에서 오는
큰파도를 넘어 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성가신일중의 하나는 생리현상을 해소하는것이다.
먼저 35년 경력에 빛나는 고사카상이 왼쪽손으로 백스테이를 잡고
오른발을 뒤쪽 스텐파이프에 지지하며 볼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그 뒤를 이어 이에 질세라 나도 자세를 잡았다.

겹겹히 껴입은 수많은 옷들을 헤치고 포신을 찾아 꺼내는 작업만으로도
나에게는 만만치않았다. 왼쪽팔을 돌려 백스테이에 감고 이리저리 밀리는
배에서 넘어지지 않게 버티기 위해 발끝에 힘을 잔뜩 주고 발사하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명령은 좀처럼 시행되지 않았다. 항명이란 말인가?

계속하여 독려와 압력을 가했지만 여전히 명령은 복종되지 않았다.
사태가 위태로워질땐 포열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포의 끝부분만
간신히 보이곤하다 아예 포신의 모습이 보이질 않을때도 있었다.
이럴땐 발사 직전 까지의 상황을 중지 시키느라 온몸의 힘을 끝에

모아 조르기에 들어간다. 눈알이 거의 풀릴지경이다. 만약에 완전히
눈알이 풀리게 되면 다리에도 힘이 빠지게 되리라.....그러면 그것은
자폭이 되는 것이다. 최소한 그런사태는 막아야 했다. 잠시후 다시
자세를 가다듬고 파도가 물마루를 막넘었을 무렵 기습적으로 발사를

시도했다. 드디어 포격이 개시되고 성공하는듯 했으나 다음 물마루로
배가 올라가 뒤틀리자 오른쪽발이 살짝들리며 중심을 잃으며 포는
아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재빨리 공격을 멈추라고 지시했지만 이미
아군의 피해는 상당했다. 오랜 시간 공격준비에 등과 머리에는

바닷물 스프레이로 흠뻑젖어 있었다. 꼴이 말이 아니었다. 앞 뒤로
아군의 피해는 실로 심각했다.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
이라고 했다. 나는 왼손에 백스테이를 잡고 꿇어 앉았다. 그러고 서야
남은 잔여 화력을 소비할수 있었다. 나의 경우 서서 공격을 할수 있는
한계는 2미터까지 였고 그보다 높게 되면 앉아서 공격하면 아군이

다치지 않았다. 3미터의 거친파도와 강한 바람에서 항해할때 나는 할수
있는것이 별로 없었다. 그 와중에도 트롤링낚시와 축범,옷갈아 입기등
평소처럼 모든 행동을 하는 선배 요트맨을 보며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느꼈다.

(핑계)나는 주로 혼자서 항해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배에서 떨어지면
그것이 곧 죽음이다. 사실이 이렇다보니 파도가 높은 날에는 팻트병을
반으로 잘라 꿇어앉아서 그곳에 화력을 모은후 일시에 공격하는 방법으로
훈련해왔기 때문에 이번에 역시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핑계는 핑계일뿐 앞으로 계속 수련하여 2미터의 벽을 넘도록
해야 할것이다. 얼마후 3미터의 높은 파도에도 당당히 백스테이를
잡고 몸을 떨고 있는 나를 발견할것이다.
출처 : 윤태근 요트 항해학교/세계일주/한국연안뱃길연구소
글쓴이 : 윤선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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